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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

출간일
2020-05-01
저자
이종찬
분야
역사·문화
판형
신국판(152 X 225)
페이지
356
ISBN
979-11-6552-139-4
종이책 정가
22,000원
전자책 정가
저자소개

이종찬

‘열대학’(tropical studies)은 예술,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기술공학, 보건의료를 융합하려는 문제의식을 지향한다.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2016)는 열대학의 총론에 해당하며, 《훔볼트 세계사》는 그 각론의 첫 작품이다. 훔볼트가 탐험했던 아메리카의 멕시코시티, 아바나, 보고타, 키토, 쿠스코, 리마 등에서 현지 조사를 했다.
이런 작업에 이르기까지 《난학의 세계사》(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2014),《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2009), 《열대와 서구: 에덴에서 제국으로》(2009), 《의학의 세계사》(2009)를 출간했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존스홉킨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과 하버드-옌칭 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지냈다. 한국사회사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과 열대학연구소 교수이다.

열대 自然史는 훔볼트과학, 식민적 문화융합, 낭만주의 예술이라는

세 차원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 근대 공간으로 발명되었다.

이것이 열대 自然史혁명의 요체이다.


훔볼트를 비롯해 칸트, 괴테, 헤겔 등 당대 유럽의 최고 사상가들은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을 은폐시켰다.

왜? 이 노예혁명이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의 지평에서 프랑스혁명은 혁명적으로 다시

탐구되어야 한다.

〈책머리에 : 왜? 훔볼트 세계사인가〉




Ⅰ. 지식의 경계를 유목(遊牧)하라


콩고 노예의 노동력 — 유럽의 해양무역 시장 —

카리브 해의 플랜테이션,

청년 훔볼트는 세상이 이 세 가지 힘의 결합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라운 세계사적 시민 의식이다.

코즈모폴리턴은 이렇게 태어났다.


18세기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의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어린이 과학위인전이나 과학탐험 동화에서도

그를 만나기가 힘들다.


정조와 순조가 통치하던 조선에서

우이도의 홍어 장수 문순득이 제주도에서 류큐를 거쳐

루손 섬까지 표류되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아카풀코에서 마닐라에 이르는,

열대 해양무역 네트워크의 실체를 느꼈으리라. 


바로 그 기간에 훔볼트는

넓디넓은 열대 아메리카의 自然史를 탐험했다.

우주를 꿈꾸던 청년이 어떻게 한 대학에서만 다닐 수 있었겠는가.

더더욱 하나의 학문만 전공할 수 있었을까.

프로이센이 좁다 하고 여러 대학에서 공부했다.

예나에서 괴테, 실러와 교류했다.


제임스 쿡 함장의 2차 탐험에

自然史학자인 동시에 미술가로 참여했던,

게오르크 포르스터와 함께 유럽의 몇몇 도시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남태평양의 자연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르주 뷔퐁을 공부하라!”


런던의 최장수 왕립학회장, 잉글랜드 동인도회사 총재,

왕립식물원장, 제임스 쿡의 1차 탐험을 기획했고 직접 참여했던

自然史학자 조셉 뱅크스.

그가 만들어 갔던 ‘전 지구적 열대 식물원 네트워크’의 위용 앞에서

청년 훔볼트는 꿈과 의지를 다졌다.


프랑스혁명의 파리에서 식물학자이면서 해군 군의관인

에메 봉플랑을 만나

열대 自然史 탐험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구절벽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대학들은 패러다임이 종말을 고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삼면이 바다인 데다가

북쪽까지 가로막혀 있는 나라에서,

입학한 대학에서만 졸업해야 하다니.

이런 지식의 감옥도 없다.

한국의 미래세대여, 지식의 경계를 유목하라.




Ⅱ. 세계를 탐험(探險)하라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가 유럽을 지탱해 주고 있다.”

네덜란드의 군사전문가 존 스테드만이

시인이며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원을 받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훔볼트는 열대 아메리카의 自然史 탐험을 통해

당대 세계사의 이런 진실을 읽어 내었다.


대서양은 푸르지 않다. 검다.

1억 2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약 350년에 걸쳐서

노예무역으로 팔려 갔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

세계 최초로 노예가 주도한 혁명이 일어났다.

콩고 왕국에서 어릴 때부터 터득했던

열대 自然史에 뿌리를 둔 영성적인 힘으로,

50만 명의 노예들이 뭉쳐서 플랜테이션의 식민체제를 전복했다.

아메리카 전역에 거쳐서 독립혁명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콩고에서 온 마카야가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

세계의 역사학자들을 향해 외친다.

“나는 모든 흑인들의 주인인 콩고 왕의 신민(臣民)인 동시에

아버지를 대변하는 프랑스 왕,

어머니를 대변하는 에스파냐 왕의 신민이다!”


‘인종’은 서구 노예무역에 의해 발명된 개념이다.

참다운 인간이라면 이 용어가 아닌, ‘종족’을 사용해야 한다.

검은 대서양의 노예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다른 민족과 종족에 대한 서구의 차별주의는

근대성의 형성에 깊이 내면화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서구 문명의 표상,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해방 노예 장-바티스트 벨레〙를 감상하자.

서양미술사에서 ‘해방 노예’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한 경우가 또 있던가.


프랑스혁명을 계몽사상의 정점으로 파악했던

헤겔은 그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은폐했지만,

‘보두 신앙’은 아프리카 自然史의 식물적 우주관이다.


‘황열’ 앞에서 수만 명의 프랑스와 영국의 군인들이 쓰러져 갔다.

훔볼트는 이 무서운 전염병이 카리브 해의 열대 自然史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고 있음을 체험했다.

유럽에서 배운 自然史 지식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열대 自然史와 분리된 醫史學은

황열의 自然史혁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결핍되어 있다.


플랜테이션, 보두교, 황열이 삼위일체가 된

콩고-아이티 노예들의 혁명이야말로,

프랑스혁명을 추동시킨 역사적 원동력이다.


카리브 해에서 신화처럼 전해져 오는

막캉달과 마카야의 혁명 정신을

한국인들도 온몸으로 실천했다.

제국의 사기꾼에게 속아 자신의 백성들이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의 에네켄 열대 농장으로

팔려 가는 줄도 몰랐다.

쿠바로 삶의 터전을 옮긴 무지렁이 임천택의 아들 헤로니모 임.

콩고에서도 항쟁했던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혁명에 앞장섰다.

그의 세계사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 어디에 있는가.


잉글랜드와의 7년 전쟁에서 패한 부르봉 왕조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세금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유용한 식물과 광물을 찾아야 했다.

이런 과업을 수행하라고 훔볼트와 봉플랑에게

특별 여권까지 부여했다.


‘식민적 문화융합’이다.

훔볼트는 현지 토착 自然史학자와의 협력이 절박했다.

에스파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계몽주의 교육을 받은 크리오요를 포함해서

물라토, 메스티소, 삼보 사람들이

훔볼트와 봉플랑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침보라소와 코토팍시 산을 중심으로 한

식물지리학에 관한 거대한 실험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1년에 어떻게 3천 통이나 서신을 교환할 수 있을까.

아메리카에서 自然史 탐험을 하면서도,

유럽의 수많은 학자, 무역가, 예술가, 외교관, 정치인들과

편지를 나누면서, 세상의 흐름을 예의 주시했다.


고등학교에서 뛰어난 수재들이 광업학교로 진학했던 사회와

광물 산업이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고 원천 차단했던 사회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훔볼트는 누에바에스파냐에서 광물의 지리적 분포를 조사하면서

세계적인 광업 아카데미를

멕시코시티에 설립하려는 평생의 꿈을 가졌다.

프랑스 화폐로 2백만 프랑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누에바에스파냐의 모든 통계 자료에 눈독을 들였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을 만나러 수도 워싱턴으로 향했다.

한 달간 담판에도 불구하고, 훔볼트는 빈손으로 보르도로 떠났다.

돌아와서도 그의 집념은 꺼질 줄 몰랐다.

제임스 매디슨,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미국 대통령에 혼신의 정열을 쏟았다.

하지만 멕시코를 향한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Ⅲ. 자연사(自然史)를 혁명(革命)하라


정확한 측정, 실용적인 지도 제작, 예술적 감성.

‘훔볼트과학’은 이 세 가지 차원이

서로 유기적으로 융합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앞선 自然史 지식을 모두 활용해서,

아메리카 자연을 측정했다.

이런 지식을 보여주려면

등온선과 같은 독창적인 지도를 발명해야 했다.


훔볼트의 위대한 학문적 성취는,

17세기 과학혁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열대 自然史 탐험에 기초한 식물지리학과 광물학을

근대 과학의 핵심적인 층위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유럽 풍경화는 워낙 식물적 우주를 지향하면서 발달했다.

훔볼트는 풍경화가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 형성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데 주목했다.

‘픽처레스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아메리카 탐험에서 마주친 역사지질학적 풍경을

1천 2백여 장의 동판화로 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융합예술가의 계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훔볼트가 남긴 동판화와

지도 작품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내 고향은 베를린이 아니라 파리다.”

아메리카를 탐험하고 돌아온 후로

20년 이상 유럽 과학과 예술의 수도에 살면서

훔볼트의 문제의식은 세 가지로 압축되었다.


누가 열대 식물을 재배하는가,

열대 自然史의 풍경화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낭만주의는 열대 아메리카에서 어떻게 촉발되는가.


말년에 남긴 대작 《코스모스》에서 말했다.

열대 식물의 재배, 열대 自然史의 풍경화,

그리고 열대가 촉발시키는 낭만주의적 언어의 힘.

자연의 상관(像觀)은 이 세 가지 힘에 의해 형성된다.


열대 공간은 원주민들에게 전체적인 구조가 없는 장소에 불과하다.

그 장소는 열대 특유의 다양한 식물과

숲, 강, 습지, 산, 암석, 초원, 동물들로 오밀조밀하게 짜여 있는,

自然史의 망이다.

훔볼트는 이 공간을 선, 각, 숫자, 지도, 지자기로 이루어진,

근대적 공간으로 발명했다.


수학자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훔볼트에게 말했다.

“발명하기 전의 공간과 후의 그것은 다르다.”

수만 년간 원주민들이 호흡해 왔던 존재론적 열대와

서구적 근대에 의해 발명된 인식론적 열대의 분기점이다.

식민통치의 방법은 훔볼트과학에 기초해서

더욱 정교하게 발달하면서

제국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동생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형 빌헬름이 말했다.

그를 저세상에서 만날 수만 있다면,

“自然史 탐험, 훔볼트과학, 낭만주의를 주춧돌로 삼아,

훔볼트는 열대 아메리카 自然史를 혁명했노라.”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식물원과 自然史박물관은 물론이거니와

멕시코시티, 아바나, 보고타, 키토, 쿠스코, 리마를 직접 조사하면서,

한반도에서의 훔볼트의 환생을 학수고대하는 어느 삼라만상 학자의

이런 역사적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감히 묻고 싶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로는

열대 自然史를 탐구하지 못하거늘,

“나는 생각한다, 존재한다.”의 데카르트를 넘어,

아프리카를 세계사의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동물을 식물과 광물보다 상위의 유기체적 존재로 간주했던,

헤겔을 넘어

“나는 느낀다, 존재한다.”의 헤르더로부터

괴테의 직관적 통찰력을 통해

훔볼트의 명제 “自然史는 인류사와 공명한다.”로 이어지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自然史와의 진정한 문화융합을 향해

‘열대 自然史혁명’을 위한 통합의 공간을 같이 만들어 나가자.

책머리에 : 왜? 훔볼트 세계사인가

감사의 글 

그림 / 지도 / 표 목록

Contents for Foreign Readers

Preface for Foreign Readers



1장. 한국에서 훔볼트는 어떻게 환생하는가


왜 훔볼트인가? 

열대 자연, 제국의 욕망과 충족을 위한 공간

‘홍어 장수’와 조선 실학자의 열대 인식

세계사와 세계지리의 상관성

기술과 과학의 관계 

한국의 훔볼트 풍경

독일 중심적 ‘과학 영웅’ 만들기

현대 독일 문학 비평

언어의 분류와 서구 석학들의 혼돈

학문의 분수령을 넘다

환생을 위한 다섯 가지 문턱 

훔볼트 세계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2장. 융합 교육과 유럽 여행


어머니의 일생과 자녀 교육

광업의 낭만주의적 상상력

열대 自然史 탐험의 전환점에 서다

런던, ‘열대 식물원 네트워크’의 허브 

파리, 유럽 과학의 수도

베를린식물원의 열대 용혈수

괴테의 자연 탐구 

나폴레옹의 이집트학사원 설립

부르봉 왕실의 특별 여권

에스파냐의 열대 自然史 탐험대

아메리카 탐험의 목적과 측정 기구

아메리카 自然史를 둘러싼 유럽의 논쟁



3장. 콩고-아이티 노예혁명: 헤겔의 은폐 


‘열대 自然史 전쟁’과 식민화의 지정학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의 디아스포라

플랜테이션 공장형 농업

왜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이라고 부르는가 

보두교, 해방과 치유의 영성

혁명과 ‘인종’에 대한 훔볼트의 인식

프랑스혁명의 역설 

황열의 自然史혁명

헤겔의 침묵, 훔볼트의 비판

독일 ‘역사주의’의 발흥: 열대 自然史의 은폐



4장. 열대 아메리카 탐험과 문화융합 


《열대 아메리카 여행기》의 글쓰기 전략 

아바나, 18세기 대서양 최대 무역항

오리노코 강에서 전기뱀장어와 사투를 벌이다

호세 무티스의 왕립 自然史 탐험대 

‘크리오요’의 정치적 독립 의지

식민적 문화융합

침보라소와 코토팍시, 훔볼트 自然史의 백미

해양공간의 ‘발명’: ‘南洋’인가 ‘태평양’인가

멕시코시티에 평생 살고 싶었다, 왜?

미국 대통령 4명에 혼신의 정열을 쏟다



5장. ‘훔볼트과학’에서 ‘열대 自然史혁명’으로 


훔볼트는 과학혁명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훔볼트과학의 스펙트럼: 세 층위

멘델스존의 ‘훔볼트 칸타타’

‘열대성’: 자연의 상관 

아름다움, 숭고함, 픽처레스크

훔볼트과학과 낭만주의 풍경화의 공명

공간의 제국적 시각화 

괴테 풍경화에 대한 역사지질학적 도상해석

근대 공간의 발명

열대 自然史혁명의 선구자들 



부록 1. 훔볼트 연보

부록 2. 훔볼트 저서 분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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