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문학, 예술, 예술가에 대한 서사적 질문과 대답들은 문학 내부에서 문학이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극한값이다. 그러나 이 값을 구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서사는 그것 자신의 외부 전체에 등을 돌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책은 문학사의 어떤 흐름으로부터도 이탈해 있으며 그러므로, 고립되어 있다. 극한적 서사의 대가다.
사건들, 문장들, 단편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질문의 메타포적 반복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동시에 그것들은 작가가 질문에 제출한 답이기도 하다. 그 답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과 상상력으로 전개되어 있다. 누구도 해보지 못한 성취는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 아니라도 예술을 가늠하는 가장 강력한 한 가지 테제가 이것이다. 이로써 극히 드물게 어떤 작품들이 예술로 승격되며 가장 협소한 예술의 영토 안에서 그 고유함과 위대함을 보존하게 된다. 보존된 고유함과 위대함은 그리고 인간의 모든 시간과 역사 속에서 언제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이 예술인가?
배우의 삶은 또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지하에서 그는 그가 아니다.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는 밤마다 무대 위에 선다. 그에게 속한 것은 도시의 파노라마 속, 여기 이 지상에 있다. 자신의 것을 모두 지상에 남겨둔 채 지하로 내려간 배우에게 될 수 없는 것,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지하에서 배우는 자신이 아니며, 지상에서 배우는 배우가 아니다.
-「쥐 떼」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수준과 경지에 올라 있는지 안다. 수십 년을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했어도, 위대하게 죽은 다른 예술가들의 예술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늠할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그것들이다. 스트라빈스키의 파괴력은 지금이 아니라 언제나 미래로부터 도래한다. 그는 실제로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곡을 만든다고 말했다.
“아무리 발이 빠른 비평가라도 나를 따라오진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시간에도 성장하고 있는 어린아이다.”
우리는, 미래에 있다.
- 「불멸」
나는 내가 만든 소설의 세계가 프라하에서 내가 겪는 실제 세계와 다르지 않다고 종종 느꼈는데, 실제 세계가 소설의 세계보다 작다고, 세계란 소설의 그것 속에 포섭되었거나 이미 속해 있는 것이라고 늘 느꼈는데, 아버지를 죽인 작가의 도주 역시 어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인지 또는 풍문인지, 아니면 세계를 품고 있는 소설의 광활한 영토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관해 들리는 풍문인지, 무엇이든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이다. 어디에서든 미스터리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 「두 예술가의 우정어린 구원」
쥐 떼
웃음
안개 속에서
쫓아온 매
불멸
질주
두 예술가의 우정어린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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