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자전을 멎고, 식물이 녹색을 벗고, 과일이 단맛을 잃고, 감정이 생기를 버려도, 성스럽게 남아 빛날 단 한 권의 책!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밝고 어두운 인간 본연의 감정의 에너지가 오롯이 담긴 새로운 시를 이 책을 통해 만나 보기 바란다.

오롯이, 그리고…

“아가야, 넌 이제 명령만 성실히 수행하면 된단다. 그럼 아무 문제 없이 여기서 편히 살 수 있어. 어때?”

그러자 아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얼굴엔 미소를 머금었지만 왠지 우울해 보였습니다.

“그래, 좋아. 너무 어려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구나. 걱정 마. 사악한 인간들 정신을 뒤집고 줄거리를 바꿔놓는 네 힘은 언어와는 무관한,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는 초능력일 뿐이니까.”

아가는 하얀 얼굴에서 미소를 싹 걷어낸 뒤 아장아장 걸어 새엄마 품으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희미한 몸뚱이는 차가웠지만 규칙적으로 꿈틀대는 심장의 요동만큼은 지극한 안정감과 신뢰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제 아가는 새엄마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시작은 끔찍할지언정 끝은 아름답고 말리라는 단호한 결심을 둘은 나누었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오직 기운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교감은 비어 있던 아가의 배터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채워 주기 시작했습니다.

1. 우도 

2. 세번 

3. 전생 

4. 해적 

5. 휴지 

6. 포도 

7. 대체 

8. 냄비 

9. 지구 

10. 해면 

11. 학교 

12. 빨대 

13. 휴강 

14. 유골 

15. 자살 

16. 두통 

17. 일상 

18. 모방 

19. 무지 

20. 식욕 

21. 낮잠 

22. 저주

23. 구피 

24. 귀신 

25. 섹스 

26. 월광 

27. 치질 

28. 화물 

29. 선량 

30. 제로 

31. 향수 

32. 방귀 

33. 반전 

34. 유방 

35. 강박 

36. 무늬 

37. 토론 

38. 천성 

39. 선풍기와 에어컨 

40. 사랑 = 똥 

41. 그해 식목일까지의 

42. 무지개다리를 건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