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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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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씻는 시간

출간일
2025-01-31
저자
황영주
분야
문학
판형
국판(148 X 210)
페이지
112
ISBN
979-11-392-2388-0
종이책 정가
12,000원
전자책 정가
저자소개

황영주

황영주 시인, 수필가
“사람이 사람에게 의미가 되는 순간, 나는 너에게 무언가를 준 사람이야.” 어느 책에서 읽은 이 문장을 가장 좋아하고, 글로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어서 감사히 여긴다.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북에세이집 『우리 연애할까』, 인문 글 쓰기 『서평을 쓸까 독후감을 쓸까』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삶에서 우러나온 시편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서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겪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사람의 행위는 동사로 표현된다. 황영주는 시집 말을 씻는 시간에서 사람을 그리고, 풍경을 만지고, 삶을 묻고 입는다. 한마디로 그의 시들은 철저히 동사의 형태를 띤다.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삶에서 나온 시들이기에 동사일 수밖에 없다. 삶이 있고, 서사가 꿰어지는 게 황영주 시의 특장점이다. 동사로 쓴 그의 시들은 한없이 담백하다. 시인은 경험에서 꺼내와 군더더기 없이 솔직한 서사로 말을 건다. 이상한 것은, 별 수식어 없는 그의 시를 읽는 동안 독자의 가슴으로 물큰한 감정이 훅 건너온다는 점이다. 국수를 파니까 그냥 국수집인 것처럼 속일 것도, 감출 것도 없는 얼굴이 온 마음이라고 노래하는 황영주의 시들은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는다. 황영주의 시가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는 그의 따뜻한 관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서는 우리 모두 별이 된다.(별바라기)

 

동사로 쓴 시를 형용사로 읽다 ; 말갛고, 부끄럽고, 따뜻하고, 단단하고, 찬란한

그저 마음만 뚝 떼어줄 뿐 욕심을 부릴 줄 모르는 시인은 이별에서조차도 말갛게 갠 얼굴을 마주보기를 원한다.(이별과 마주보기) 부끄러운 어느 하루도 소환해 온다. 고만고만한 밥상을 가졌으면서, 속에 남을 가득 채우고 다녔으면서 자신보다 못하다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는 체 안 한 모습을 통렬하게 인식한다. 부끄러워지고 돌아가 안아주고 싶었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따뜻하다.(부끄러운 날) 또한 시선을 약한 곳으로 돌린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시를 쓰는 이유는 오로지 온기를 담고 싶어서다. 거짓으로는 결코 담길 수 없는 온기를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본다. 냄새 난다고 구박받는 담배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고,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을 어설픈 노래와 몇 잔 술로 푸는 지하의 가난한 집 아이 김율리아가 꽃씨를 심었을까 궁금하다. 가난한 자기 가방을 턴 소매치기가 안쓰럽고, 낮게 피어 홀씨를 날려 보낸 민들레가 아프다. 끝내는 사물과도 말을 터 이팝꽃 하나에서도 배울 점을 찾아낸다. 독자는 시 속에서 끊임없는 성찰로 스스로 품격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시인의 마음을 읽어낼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먼저 보낸 얼굴들이

슬픔을 슬몃슬몃 털어내라고

일상의 사소함을 몽땅 빌렸다는 걸

- 일상의 배려부분

 

 

아무리 애를 써도 돌릴 수 없는 삶의 버거움

이제는 저만치 물러선 아버지의 이름을 주문합니다

그래도 애틋한 남편의 자리를 주문합니다

- 홈쇼핑부분

 

 

날마다 삭는 빈 수족관

유행가 가사를 쉼 없이 토해내는

지친 음악도 바다

누군가 던져버린 술병도

바다야

아름답게 뜨겁고 미치도록 울렁대지

마치 곧 죽을 것처럼

 

바다가 되렴

정지된 화면을 안지 말고

일어나,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어, 네 삶을 향해

- 내딛다부분

 

 

나는 세상을 모르고 세상은

아예 나를 모르고

 

서로의 가슴에 물수제비뜨면

미련 없는 손짓

얕은 물을 날아오른다

- 물수제비뜨면부분

 

 

가장 정직한 얼굴로 하루를 살아낸 자여

내일은 산 같은 몸으로

길의 가운데를 당당히 걸어오라

- 구루마부분

 

 

퍽퍽하고 짠내 나는 무지렁이라도

스스로 낯설지 않은 진짜

내 얼굴 하나 달고 싶다

- 간판부분

 

 

나는 서툴고 그러므로 떠나고

나는 아프고 그러므로

 

그러므로 마음 주지 말자

 

당신을 마음에 들이고 내보내는

그런 일이 나는 여전히 겁이 나고

- 비겁한 하루부분

 

 

사람을 손으로만 만지랴

마음이 곧 말이니

말을 씻는 일

나를 다시 빚는 일이다

 

말갛게 헹궈

볕살 담뿍 담으면

내일은 마음껏 내어줘도 좋으리

- 말을 씻는 시간부분

시인의 말

 

하나. 사람을 그리다

 

그리움

일상의 배려

딸기를 먹다

홈쇼핑

나에게 길을 묻다

창호지 젖는 밤

주전자

세숫대야

고모의 하나님

낡은 가방 같은

명옥이

금요일 오후잖아요

건넌방

담배 할아버지

오지랖 넓은 여자

외사랑

내 안에 전사가 산다

그대란 자판기를

결혼 후 너희는

이별과 마주 보기

재회

사랑을 잘라내다

김율리아

전단지

국수집

 

. 풍경을 만지다

 

리그넘바이티 펜을 들고

낙엽비

동백꽃 지면

목백일홍

샤스타데이지 언덕에서

이팝꽃

젊은 할미꽃

바다로 가

별바라기

불완전 탈바꿈

비를 생각

사마귀에게 먹히다

내딛다

꽃씨를 보낸 민들레는

진 달

 

. 삶을 묻다

 

구루마

물수제비뜨면

늦은 밤 편의점에서

나의 마당엔 소리가 없다

간판

도시의 연등

물 빠진 속옷

버려지는 이름을 대하는 자세

비겁한 하루

밥 먹듯 시를 읽는

사춘기와 갱년기

사당역에서

시가 함박눈처럼 내린 날

쓸쓸한 사랑을 읽다

셀프 주유소에서

연극을 좋아하세요?

주차장에서

불법 현수막

 

. 삶을 입다

 

샌들의 품격

말을 씻는 시간

외계어

아프지 않고 어떻게 시를

은행 창구 앞에서

부끄러운 날

사람의 언어

빨래 건조대

곁길

가장자리에 서서

구두 뒤축

봄날

할인 매대에 누워

택배를 기다리며

아마추어, 무대 오르다

영업 방침

도루묵 조림

도로 공사

의미 없음과 의미 있음

괜찮은 날

잘 익은 사람

 

해설 | 동사로 쓴 시를 형용사로 읽다 심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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