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지식과감성# 소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박일우의 중편소설 《장꽃》을 선택했다. 2022년 첫 소설집 《완벽한 방》을 출간하고 2년 만에 다시 그의 작품들과 마주한다. 첫 단편집에서 아직 완결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 외형을 확장하여 네 편의 중편 연작소설로 돌아왔다. 물질적 시간과 도시적 감수성이 아주 쉽게 폐기 처분해 버린 이야기들을 장이 익으면서 피워 올린 하얀 장꽃을 걷어 내듯 조심스럽게 지극히 낯설지만 익숙한 우리의 공간과 일상에서 펼쳐 보인다.
“이곳의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무모해도 그렇게 무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맨 처음 본 곳이 마음에 꽂히자, 다른 곳으로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장꽃》에는 총 네 편의 중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일 먼저 수록된 작품 〈오죽〉은 집을 짓고 귀촌하는 과정이 옆집 할머니와의 대립과 딸아이의 태어남으로 모색된 화해의 방식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표제작인 〈장꽃〉은 음식 레시피를 두고 벌어지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신경전을, 〈예성당〉은 현대사의 균열 지점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인물들의 현재를 관찰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이기심과 불화가 물질화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 정체성을 다뤘다. 마지막에 실린 〈몽강〉의 경우 앞선 작품들과 약간 결을 달리한다. 단선적인 사건에 복잡한 심리를 중첩하기 위한 전략으로 안과 밖에서 마을 공간을 조망하는 화자를 중복하여 설정, 물질적, 도시적 감수성이 놓쳐 버린 이야기들을 길어 올리고, 마을에서 대대로 영화를 누려 오던 가문의 몰락 과정을 그린다.
관습적으로 말해서 중편보다는 조금 작고 단편이라기엔 큰, 뭐라 말하기 어중간한 이 네 편의 이야기는 화자와 공간, 일상을 공유하며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전략이 된다. 이는 IT 기술에 부합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에피소드화하는 경향에서 반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공간에 스미어드는 일, 이것은 나에게 글쓰기와 삶을 이어 가기 위한 절대 조건이다.”
그래서 박일우는 작품을 쓰면서 가장 관심을 많이 기울였던 것을 작가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의 변화되는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장꽃》의 서사 주체인 귀촌한 젊은 부부, 이들의 시각으로 지금의 농촌 현실을 바라보는 일은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흐른다고 해도 완결형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으로 읽힌다. 젊은 부부는 이곳에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커서 이제 초등학교에 다닌다. 귀촌 초기 마을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못했던 부부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당당한 마을 구성원으로서 늙어 가는 농촌의 현실과 한 세대가 저물어 가는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과 생애 주기에 따라 공간을 바라보고 그 안을 관찰하는 일은 고정된 시각일 수는 없다.
오죽(烏竹_Black Bamboo)
장꽃(醬花_Soy sauce blooms)
예성당(藝聲堂_Yesungdang)
몽강(夢江_Dreams River)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