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닌 함께 안 가?”
지연이의 말을 윽박지르며 잘랐다.
“조용히 해. 소리 낮춰. 옆집에서 듣겠다. 할머니께 인사하고 가자.”
현관에서 엄마는 지향이가 신은 샌들을 벗기고 편리화를 신겼다. 지향이와 지연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기다려야 합니다. 꼭.”
아이들을 앞세우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마주했다. 의연하고 담담한 표정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쫓기듯 문턱을 넘었다. 닫힌 문고리를 놓지 못하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엄마의 숨소리며 옷깃 스치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우리가 떠나길 기다리는구나. 그 초연함이 용기를 주었다. 엄마를 부르려던 마지막 미련을 삼키고 손잡이를 놓았다. 언젠가 동생이 그랬듯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돌아서 눈물을 닦고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가자.”
돌아보고 싶어도 목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언덕을 내려 두 갈래 길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을은 어둠을 감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들의 손을 나누어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큰길을 버리고 논밭 사이로 난 작은 길에 들어섰다. 오솔길은 짙은 안개에 묻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로 첫걸음을 디뎠다. 먼 길, 아직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머나먼 길이 앞에 있었다.
- 본문 중에서
공동체의 삶을 규율하는 법과 규정은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뚜렷한 방향성을 벗어나면 안 된다.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는 세언(世諺)이 있다. 정부의 정책과 법기관의 단속이 민초들의 생존을 위협할 때 민초들은 생존을 영위할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편법, 불법을 떠나 생존 자체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휴전선 이북 동포들의 삶은 분단 이래 한국 문학사에서 어둠에 갇혀 있었다. 최근에 이르러 탈북 문인들에 의해 돈절의 시간에 균열이 일고, 어둠에 갇힌 반쪽을 조명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한국 문학사는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허옥희는 이 변곡점을 두터이 하는 작가 중 선두에 서 있음을 이 작품으로 증명했다. 분단 문학의 커다란 초석이다.
소설가/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이정
책은 북한의 현실을 다룹니다. 독자들은 두 딸 지향과 지연을 남편 없이 키우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오늘의 북한을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북한 이탈 주민’으로 불리는 북향민들의 글은 문학성보다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지만 허 박사의 글에서는 남다른 상상력과 글솜씨가 번뜩입니다. 독자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아파하는 주인공의 독백을 읽어가는 동안 모두 저자의 마음에 동감할 것이며, 북한은 오늘도 가족의 생이별이 벌어지는 슬픔의 현장이라는 사실에 아파할 것입니다.
혜림교회 김영우 목사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정부에서 양서로 지정받아 공공 도서관에도 비치될 정도의 반향을 일으킨 《엄마의 이별 방정식》이란 수필을 쓴 저자가 이번에 처녀작으로 발표한 소설 《먼 길 1》을 읽으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1인칭으로 쓰여 마치 논픽션을 읽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실감 나는 소설인데 마치 제가 북한에 가서 직접 책 속의 상황을 겪는듯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놀라운 소설입니다.
㈜스타리치어드바이져 본부장 김정환
제1장 작은 지붕 아래
제2장 실종
제3장 길
제4장 고용
제5장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