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같은 식은 여자 철창 같은 집
문 열기 무섭다 용맹한 범 한 마리 도사린 방
책 끌어안고 공부하는 척, TV 삼매경인 척
그새 친구 진동음 울린다
술 마시지 마요, 일찍 와요?
요리조리 눈치 보며 사이사이 쥐구멍 찾는 척
담 넘어온 노란 개나리 흐느끼는 갱년기
호르몬은 바닥나고, 엄마 타이틀 빛바래고
아들놈, 말뚝 박는 말
미리 말하고 올라오시라니까요?
그래, 너거도 늙어 봐라 거꾸로 저무는
노을 시계 산 너머 붉을 끼다
- 「노을 시계」
그녀의 서정은 부름의 시이자, 그리운 것들에 대한 무늬이다. 서정시는 시간의 올을 풀어 공간 속에 기억을 짜는 작업이다. 지나간 것에 대한 흔적이자, 아련한 얼굴을 떠올리는 들춤이다. 그녀의 시는 울림과 감동의 사모곡이자 사부곡이다. 가족사에 얽힌 애잔한 이야기가 달빛 마당에서 조곤조곤 들려온다. 어떤 노래는 삶의 편린이 아프게 녹아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애틋한 애조를 띤다. 그녀의 귀는 하늘과 땅의 말을 제 나름으로 새겨듣는다. 중년의 깊은 내면의 바다를 헤엄치는 고독한 방황이 있다. 아름답고 슬픈 그녀의 감성적 리듬은, 개인적 서사의 음영(陰影)을 깊게 녹여 냈다. 그녀의 언어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한없이 외로운 향수에 닿아 있다. 붉은 단풍의 세월이 있는가 하면, 화사한 봄날의 꽃나무처럼, 마냥 들떠 있기도 하다. 어머니와 그녀, 딸과 손녀로 이어지는 여성으로서의 굴곡진 행간은, 기쁘기도 하거니와 허무하기도 하다.
제1부 노을 시계
거울 앞
끼리끼리
노을 시계
맨드라미꽃
번뇌
바운스, 바운스
부끄러운 손
넋두리
공염불
고장 난 사랑
꽃 피는 봄날
내 안의 너
제2부 엄마와 참외
선한 바람
시부렁시부렁
엄마와 참외
장독대
손끝
엄지척
꽃피는데
냉장고
공터
토닥토닥
비명
어부바
제3부 나비
나비
전화벨 소리
보소
파지破紙
거짓말
아뿔싸
달밤 콩깍지
천불
밀고 당기고
말꼬리
수선화
나무
제4부 하얀 그림자
날아가는 새
사위 사랑
일기 예보
하얀 그림자
딱히
폭우
기억
2020 불안한 봄
쑥떡
그냥
아닌 척
오늘
제5부 이해한다는 말은
잠깐인 거야
독거獨居
이해한다는 말은
점점
에펠탑
활짝
후렴 인생
헌 신발
미안해
이브의 유혹
그때는, 내 미처
뭔 할 말이
■ 해설: 그리움의 무늬(김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