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아파트 103동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자는 단 한 번의 성공에 집중한 듯했다. 화단 나무에나 떨어져 목숨을 부지하기 싫었던 게 분명했다.
1-2호 출입구 지붕마루 한가운데에 여자는 자리하고 있었다. 짧은 파마머리 아래 세 갈래로 흐르던 핏물은 배수구에 이르지 못하고 흔적으로 남았다.
- 〈야자 가로수 이야기〉에서 발췌
습작 때 썼던 단편들을 모아 소설집을 낸다. 꽤 오래전 썼던 초고들이라 시대 상황이며 단어의 느낌이 맞지 않아 새로 쓰다시피 고쳤다. 서너 달 동안 퇴고하며 몇 년간 글을 쓰지 못하게 한 두려움이 가벼워졌다는 걸 느꼈다. 당선을 가져다준 소설, 〈손〉을 더 이상 기준에 두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소설의 변신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생각 없이 넘겨짚어 쓴 단어들과 겉치레로 표현한 문장 정도만 고쳤을 뿐. 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내가 생각 없이 쓰고 있지는 않은지, 소설 속 인물들을 단지 활자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든 것만으로 감사하다. 앞으로 소설을 쓰는 동안, 어리석은 내가 흐트러질 때마다 분개한 소설 속 인물들이 기꺼이 달려와 뒤통수를 때려 주길 바란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
- ‘작가의 말’에서 발췌
- 사랑스러운
기침
야자 가로수 이야기
터치맨
손
파수(把守)
상승 기류 속으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