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다정한 세상을 꿈꾸지만, 전선이 명확한 세상에서 나는 어떤 이에겐 천사지만, 어떤 이에겐 원수가 되어 온몸으로 칼을 맞고 아파하기도 한다. 성실하게 나의 하루를 지켜 가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 여기고⋯. 가까이 ‘도서관 댁’이 있어서 참 좋다는 할머니께 아무 해 드리는 것 없이 고작 한 권의 책을 팔 뿐이지만, 이 책이 쓸쓸한 할머니의 저녁 잠자리에, 상처받은 내 마음에 위로의 한 줄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 중에서
11이란 숫자는 겨울 숲과 자작나무 숲을 연상시킨다. 위도가 높은 나라들을 여행할 때, 하얀 수피를 감은 채 쭉쭉 위로 서 있는 나무들은 무슨 북유럽의 미인들이거나 철학자들같이 경이로웠다. 차디찬 대기 속에 맨살 같은 속을 하얗게 드러내고도 의연한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십일월을 좋아하는 만큼 나도 그 나무들 틈에 서고 싶고 닮았으면 했다. 겨울 숲처럼, 자작나무 숲처럼 가볍게 뜨거워지면 좋겠다. 계절이 지나가는 그림자와 내 안의 어제와 오늘을 조용히 감지한다. 뜨겁거나 호들갑스럽거나 산만할 때가 아닌 가을색이 맑게 가라앉는 십일월이다. 플라타너스를 만나고 자작나무를 기억하고, 나무 같은 삶을 동경한다면 내가 좀 더 깊어질까. 보일 듯 말 듯 모호한 흐름 앞에 공원 숲이 다른 시간으로 깨어나고 있다.
프롤로그
1장
안과 밖
맷집
사방 연속무늬
노모와 카레
내 집이 보인다
너에게 다가서다
등불을 켜면
가위 날다
2장
첫째와 다섯째
그대의 향기가 그립다
떠나야 만나게 되는 것
나의 이름은
그곳은
남해 그 땅을 넘보다
술 한 모금
굴다리
3장
그 나무와 그녀
너의 역습
그해 바다
이별이 무심하려면
할미는 바쁘다
팬심
터
끈 잡을까
코로나 단상
4장
선택의 순간
화로
의인
연鳶, 날다
산다는 것
손잡다
밥심
북해의 별
봄에 온 손님
5장
발효한 사랑
말 한마디의 힘
물 이야기
발자국
소풍
시작과 끝
파크 콘서트
십일월의 일기
노모의 초상肖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