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매사를 작가의 입장에서 듣고 보고 읽고 그리고 느껴야 한다. 삼국지를 읽으며 감동을 하고 감동보다는 사춘기 그 나이에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를 먼저 생각했던 적 있다. 작가로 사는 일이 숙명이었던 것 같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을 한다. 흘려 버릴 수 있는 일들을 다시금 되씹고 과거를 현재로 불러서 그때의 느낌과 기분으로 쓰게 된다. 그러나 어쩌랴. 말할 수 없는 아픔도 슬픔도 앙금으로 남은 것들이 글을 쓰며 치유되고 행복해지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된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고통 중에 있을 때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견뎌 왔기에 지금은, 이 나이에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이런 마음과 생각들이 이번 시집에 들어가 있다. 울었던 가슴에 따뜻한 위로의 물결이 흐르기를 바란다.
바람이 분다
어둑한 저녁 흔들리는 나무들
가로등 불빛을 잉태하고
익숙한 몸놀림으로 춤을 춘다
구름보다 진한 베일에 덮인
평온한 얼굴의 마을
밭들도 작물들도 소리 없이
이슬을 먹는다
맑은 언어들이 고랑 사이로 흐르고
뜨뜻한 체온의 다리를 뻗는다
태양보다 먼저 눈을 떠
노을보다 늦게 하루를 마감하는
흙과 농군의 밀어가 손수레에 담겨
등 따신 미래의 레드카펫을 짜고 있다
거칠어진 손 안에 넉넉한 웃음
배부른 만삭의 꿈들이
오늘도 낮은 선율의 휘파람 소리로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작가의 말
1부
1. 바람이 분다
2. 새벽의 노래
3. 러브레터
4. 응급 사랑
5. 병실에 누워
6. 다시, 첫사랑
7. 첫눈
8. 몰랐어요
9. 인연
10. 발톱 깎기
11. 황홀한 아침
12. 포인세티아
13. 서재
14. 분꽃 피는 오후
15. 사랑착각증후군
16. 그립다
2부
17. 다시
18. 황혼빛
19. 마스크 가면
20. 의무적인 음주
21. 모래시계
22. 밤은 집이 없어
23. 편지
24. 반지하
25. 씨밀레
26. 이사
27. 나무와 빗소리
28. 기억의 눈
29. 가장 아름다운 시간
30. 떨굼의 미학
31. 문을 열지 마오
32. 책의 과수원
3부
33. 내 심령의 프레스코화
34. 용화산 돌탑
35. 연꽃과 기와
36. 경이선호성(驚異選好性)
37. 씨앗의 여정
38. 뒹구는 것들
39. 생(生)
40. 녹슨 주전자
41. 산수유나무
42. 동반자
43. 유채색 바구니
44. 항구
45. 동화
46. 별 하나
47. 등반 손님
48. 덕유산 -가을 산행
49. 스승과 제자
4부
50. 내외간
51. 단순
52. 추억, 견딜 만큼만으로
53. 모국어
54. 첫 비행
55. 무덤 속에서
56. 남은 그들
57. 스스로 사라진 자
58. 엄청난 부와 엄청난 가난의 비례 -기사
59. 공동체 시민아카데미
60. 사랑의 빵조각
61. 최근의 사랑법
62. 복권
63. 강과 다리
64. 망각의 칼
5부
65. 누워도 될까요?
66. 손님
67. 낯선 혹은 부드러운 시선
68. 오지 않아도 그리울 겁니다
69. 희망은 단 하나 109
70. 슈퍼 지구 -행성 케플러 22b
71. 미래의 life style
72. 내가 살아 있습니다
73. 붉은 울음
74. 김장하는 날
75. 할 수 없는 말
76. 그래도
77. 그들을 위한 원점
78. 검은 유리알
79. 하늘의 빙하
80. 벌초하는 날
81. 아픈 눈빛
82. 종점에서
83. 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