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글’이라는 소재는 필수적이면서 동떨어져 가고 있다.
유려하게 읽히고, 충만하게 남겨야 하는 일상의 자극 때문에. 이러한 생각에 글로 생각하게 하고, 시로써 표현하게 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급격한 시대에 묻힌 여유와 사려의 방점이 되길 바라며.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들었던 비슷한 맥락의 고민에 대해서 종종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하기 나름이다.”라고 말이다. 이도 맞는 말이지만 그에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문이 맴돌았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문장에 타당함을 더하기 위해 부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가 목적과 방향이라고 얘기하고 나누는 게 얼마나 포괄적이고 방대한지, 개인에게 공감하기 어렵거나, 평범하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 다소 먼 필요성을 가진 소감이 글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나의 목적에 가깝지 않다고 하면 ‘맞다’라고 얘기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잠정 결론으로 다가가고자 한 주제가 주행과 역주행이다. 보편적으로 주행은 한 방향으로 한다. 우리는 주로 우측 보행에 익숙하고 우측 문화에 길들여 있다. 그렇다고 주행하는 주체를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는 모든 것을 역주행이라고 할 수 없다.
건너편에서 올 수도 있고,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지나갈 수도 있는 왼쪽의 주행. 나는 이런 주행을 해 보고자 한다. 단번에 보기에 같은 방향이나 나란히 흐르지는 않아도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가는 ‘나’라는 주체로서 나의 방향과 반대로 가는, 다른 이들의 방향과 또 다시 반대로 가는 서로의 주행과 역주행.
이 상대적 다양성에서 각 23km, 52km, 73km, 134km, 표현의 정규적인 과속을 통해 산출한 나만의 글로써 주행과 나의 글로 된 역주행을 달리고자 한다.
범상에 반속
1. 23km_ 위태한 결심.
거저 내리던 햇살과 그저 내리던 빗물 _감사
흐린 날 뒤의 _갠
마음속 간절한 이기적 본능 _기도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아름다운 _꽃
우거진 허영에 얼룩진 _낭만
밭의 꽃 그리고 _농부의 꽃밭
되고 싶었던, 되고 싶어서 _동경
줄곧 가리던 _마스크
자는 중, 깨어 있던 _무덤
너도 그래? _불쾌한
각자의 동산 _사랑
당연히 초라한 _쓰레받기
둥글게, 모질게 _안경
알려고 해서 _알 수 없는
대체 _어느새
뭐 _어차피
상식의 눈치, 의례적 간과 _우회전
많이, 그러나 좁게 _자극
가만히, 편안히 _자세
무심한 퇴화 _Sns
2. 52km_ 거슬리는 거스름.
흑백에 낀 색채 _그림
촘촘하게 빠져나가는 _그물
스스로 외쳐야 했던 _나, 병
한 칸으로 만든 한 장 _달력
날이 가도록, 저 혼자 _달팽이
한 움큼의 공갈 _담배
나, 그리고 나 _도플갱어
떠돌기 위해 _돛단배
흐릿한 면책 _모자이크
순간이 된 어느새 _사진
정적인 촌각 _새벽 소리
점찍은 공소 _선점
이라 하여 켜진 _소통
어두워서 괜찮아 _손전등
큰 만큼 묻혀 낸 _얼룩
순수한 일침 _웃음
꼿꼿하게 기운 _저울
담아. 깨져. _접시
객 없는 전도 _하루
말갛게 섞인 뿌연 상식 _희석
3. 73km_ 의심된 정향.
발전적 쇠퇴 _감수성
비추는 나, 비친 남 _거울
분 바른 이웃 _광대
무궁의 몰락 _국화
휘날리고, 흩날린 _깃발
몇 푼으로 _단 돈
명성의 혼란 _명소
잇기 위한 매듭 _민들레
아닌 중에 빚어진 _배냇짓
이제껏 없던 멋대로 _별천지
몽롱한 강박 _불면증
탈선의 탈선 _속세
숨 쉬는 죽음 _솥
다르다는 치열함 _이파리
모두의 다른 때 _일생
안전한 부실 _젠가
잡음과 소리, 그 사이 _주파수
한 끗의 격 _창가
일맥의 착각 _키노피오
가치 있는 여가 _Otium cum dignitate
4. 134km_ 결의의 과속.
수두룩한 네모의 가치 _간판
시절을 물고, 시대를 타는 _개천
외로운 동무 _경독
지나간 신호 _교차로
겹친 걱정과 별개의 무게 _구**
진을 먹으며 _늪
다른 데 배어 버린 진정 _랑그
매혹적인 부조화 _마술
태만이 어르는 느긋한 버릇 _만성
천혜의 잡목 _무실과
은밀하게, 확고하게 _미동
소신과 반증 _미라
값의 위치 _분수
타고난 영험 _서낭당
애틋한 어긋남 _연정
사지의 연명 _진흙탕
뻔뻔한 쳇바퀴 _탁란
기어코 오린 _톱니
구현의 사실 _해상도
자신을 알라 _Nosce te ips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