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명량 해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물러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라도와 경상도 남쪽은 오랫동안 왜적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제주도는 아예 일본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순신은 이곳 명량의 좁은 물목을 최후의 결전 장소로 정했음이 분명하다.
적은 전선으로 수많은 왜선을 대적할 최선의 방법은 좁은 수로를 택하는 것이다.
그곳은 명량(울돌목)뿐이었다. 1년 전 이순신은 체찰사 이원익과 연해안을 순시하면서 이곳에 들러 머물렀었다. 그때 이 거센 물살의 목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고 이제 명량(울돌목) 해협은 조선 수군의 살 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왜선이 진도 외양을 돌아 명량을 피하는 일이 없게끔 유도하기 위해 회령포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동했고 벽파진에서는 15일을 머물며 적을 유인했던 것이다. 이제 최후 결전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 이순신은 진을 우수영으로 옮기고 제장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를 장수들에게 전했다.
“병법에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死卽生 生卽死)’라고 했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영을 어긴다면 즉각 군율대로 다스려 작은 일일이라도 용납하지 않겠다” 하고 재삼 강조하였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비장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 [명량대첩] 중에서
이 책은 연구서나 소설은 아니다. 단지 역사서나 고전을 읽어 가면서 필요한 내용을 취사선택하고 날짜별로 정리했을 뿐이다.
이순신에 관한 책은 수도 없이 많았다. 모두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썼겠지만 대부분은 정조 때 집대성하고 이은상 선생이 한글로 번역한 《이충무공전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사견을 조금 보탠 글을 하나 더 추가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이순신의 생애와 더불어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조명하자는 목표를 잡게 된 계기다.
작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닌 필자가 역사를 다룬 책을 낸다는 것이 외람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필자가 읽고, 느끼고, 공부한 만큼이라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01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 선조 30년 (1597 정유년)
밤새 생각하여 죽을 꾀를 내다
명은 구원군을 편성하는데, 선조는 이순신을 죽이려 하다
이순신 백의종군하다
수군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남원성이 함락되다
명군의 직산 승리와 이순신의 명량대첩이 나라를 구하다
양 경리 도산성을 총공격하다
02 7년 전쟁의 끝,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전쟁이었다 : 선조 31년 (1598 무술년)
군량 운반이 최우선 과제였다
간인의 참소로 양 경리가 물러나다
명군 4로 병진을 하다. 풍신수길은 수명을 다했다
선조는 정사를 폐하고, 유성룡은 탄핵을 당하다
명군 중로군과 서로군은 패하고 대책이 없었다
구국의 명장 전사하고, 구국의 명재상 하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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