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두 번에 걸친 홍건적 침입을 막아 내고 토벌한 과정과 전쟁에 출전하여 고려를 구한 장군들(고려 16 공신 도원수 안우 장군을 중심으로)의 활약상을 관련 자료를 통하여 분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우도록 하고, 지금까지 잘못된 역사적 내용을 지적하고 시정되어야 할 부분을 분명하게 밝혔다.
저자는 공학자의 입장에서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동사강목》, 《해동명장전》, 《한민족전쟁통사》, 《동국병감》, 《동국역사》, 《고려시대 군사전략》, 《동문선》 및 다수의 고문서 자료 등 국내의 모든 자료를 수집, 객관적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증명 및 설명하였다.
고려는 홍건적을 토벌할 때, 20만 명의 고려군을 동원하였다. 이는 고려를 건국한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군대였다.
1359년 12월 홍건적 4만여 명의 침입을 받아 서경(지금의 평양)까지 함락되었지만, 안우 장군 등의 활약으로 3개월 만에 완전히 토벌하였다.
그 후 또다시 1361년 10월 홍건적 20여만 명의 침입을 받아 서경과 수도인 개경(지금의 개성)이 함락되었고 공민왕은 복주(지금의 안동)까지 피난을 갔다.
이 국난의 시기에 도원수 안우 장군과 두 명의 원수는 무너지는 고려의 사직을 혼신의 힘을 다해 백척간두 존망의 위기에서 구하였다.
나라를 구한 도원수 안우 장군과 이방실, 김득배 장군은 간신의 모함으로 함께 모살되었지만 조선조에서 고려 16 공신으로 추증되어 숭의전에 배향되었다.
고려왕조 74명의 공신 중에서 백성을 위하고, 나라에 공적이 큰 16명의 고려 공신을 선정하고, 그들을 숭의전에 모시도록 한 것은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배운 조선의 유학자(儒學者)들이었다.
도원수 안우 장군 등을 고려 16 공신의 반열에 올린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은 정의(正義)에 대한 개념이 올바로 정립되어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선비(士) 정신(精神)이란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라를 구한 영웅, 서희, 강감찬, 윤관,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는 모두 고려 16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들어가기
제1장 출사
1. 탐진의 유래
2. 장군의 출사
제2장 홍건적의 침입과 토벌
1. 고려 후기의 군사 편제
2. 홍건적 토벌 전략
3. 1차 침입과 토벌
4. 2차 침입과 토벌
제3장 장군의 모살
1. 김용의 모살 음모
2. 공민왕의 묵인
3. 공민왕의 평가
제4장 고려 16 공신
1. 고려 16 공신
2. 도원수와 총병관
3. 노인 평장사
4. 승첩문과 노포
제5장 장군의 사당, 설단, 추모비
1. 숭의전
2. 조곡서원
3. 신도비
4. 숭경제
5. 추모비
제6장 관련 사료 모음
1. 《고려사(高麗史)》
2. 《고려사 연표(高麗史 年表)》
3. 《고려사 열전(高麗史 列傳)》 (안우 편)
4.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5.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7. 《동사강목(東史綱目)》
8.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
9. 《한민족전쟁통사(韓民族戰爭通史)》
10. 《동국병감(東國兵鑑)》
11. 《동국역사(東國歷史)》
12. 《고려시대 군사전략》
13. 고문서 자료
끝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