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여경 소설집 『오후 4시의 그녀』는 싱싱한 내음 듬뿍 담긴 순정한 인생의 번뇌를 거칠게 그려낸 드로잉이다. 작품들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번뇌하는 인간군(人間群)의 에피소드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8편의 작품 모두 성공적으로 살아간다고 인정하기엔 결격사유가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하나같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번민의 화톳불을 하나씩 안고 비틀거린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대개 비극 속에 살면서도 끝내 비관하지 않는 억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가슴속 고백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화자들은 가식이 없는 진솔한 화법으로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경계하지 않고 끈적하게 토하거나 비명을 지른다. 별스럽게 꾸미지도 않고 꾸미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흔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작가의 메시지를 흥건하게 녹여낸다.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가깝고 먼 이웃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쉬운 듯 기어이 쉽지 않은, 축축한 고백들을 읽으며 가슴이 젖어 드는 미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안휘(소설가/평론가)의 작품 해설 중에서
허여경 소설집 『오후 4시의 그녀』는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평범하지만, 고뇌하는 여덟 명 인간의 내면을 터치해내고 있다. 아이를 홀로 낳아서 기르는 엄마의 애틋한 일상이 잘 그려낸 「진주의 사랑」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철없는 소녀들이 생각 없이 저지른 나쁜 선택 하나로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가혹한 인생의 무게를 다룬다. 어쩌면 독자들의 아이들이거나 또래의 이웃 아이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사이버 세계는 인간의 일상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주는 신천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복잡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무형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뜨거운 사랑과 허허로운 결말을 다룬 「가장무도회(This masquerade)」는 인터넷을 쓰는 모든 분이 공감할 것으로 본다. 「끌림에 관한 명상」은 구조 자체가 독특한 소설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하염없이 더듬어 들어간 산문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다. 가벼워 보이는 그러나 남녀 인간의 실체를 꾸밈없이 크로키해내고 있다.
「은이의 네버랜드」는 어쩌다가 무병(巫病)이 든 한 여인의 처절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모두가 낯설게 여기는 그 세계를 따뜻한 시각으로 톺아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표제가 된 「오후 4시의 그녀」는 성공적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중년 남녀의 억척같은 삶의 현장 에피소드다.
「수선화 핀 마당가에서」는 한때 성공했던 주인공이 실패를 경험하면서 빠져드는 ‘다단계’ 유혹의 시계에서 부서지고 깨어지는 방황기록이다. 「사랑, 그게 뭔가요?」는 질풍노도 속에서 흔들리는 청춘들의 사랑과 실패에 대한 솔직한 일기장이다. 삼각관계 속에서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거듭하는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후회, 새로운 깨달음에 흔쾌한 공감을 일군다. 「엇박자」 역시 성공하지 못한 한 여인의 결혼 생활과 새로운 인연에 대한 갈망, 그러나 엇갈리고 마는 현실을 촘촘히 천착한다.
허여경의 소설은 현실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 그 에피소드를 솔직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독자들에게 잔잔한, 그러나 소중한 공감과 깨달음을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책을 내며
진주의 사랑
가장무도회(This masquerade)
끌림에 관한 명상
은이의 네버랜드
오후 4시의 그녀
수선화 핀 마당가에서
사랑 그게 뭔가요?
엇박자
작품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