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계속되는 폭설로 도로가 막혀 마을은 고립된 상태였다. 당시 상황은 전쟁의 막바지라 퇴각하는 인민군의 행렬로 어수선했다. 이런 상황에서 열아홉 살 앳된 아버지가 어린 자식을 살리겠다고 수십 리 지름길인 산길을 질러 나섰던 것이다.
- 「나의 아버지」 중에서
두 눈 꼭 감고 말문마저 닫은 아버지는 양로원이 싫다고 온몸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평생을 바쳐 다섯 자식을 애지중지 끌어안고 키워내신 아버지가 이제는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모멸감으로 절망하고 계신 것이다.
- 「아버지의 종착역」 중에서
“숱한 비밀을 간직한 산사에서 바람이 연주하는 맑은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이성과 처음 마주했던 그 떨림의 순간을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벅차오른다”
「내 소녀 어디 갔을까」. 이 작품은 첫사랑에 눈뜬 사춘기 시절의 순정한 기록이다. 작가는 소녀를 마음에 두지만 오랫동안 가슴앓이로 시간만 흘려보냈다. 시골은 도시와 달라 웬만하면 어느 마을 누구의 자녀라는 걸 다 알고 지낸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상급 학교에 진학을 포기한 소녀 때문에 애끓는 소년의 감정이 가감 없이 표현되어 있다. 흡사 황순원의 원작 『소나기』를 빼닮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작가는 중학교 동창 자녀의 결혼식장에서 그녀와 해후(邂逅) 한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그녀와 마주한 작가는 그녀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 못했음을 빛을 잃은 얼굴 표정이나 차림새로 미루어 짐작한다. 그녀의 아버지께 뺨까지 맞으며 소중하게 키웠던 첫사랑이 행복하길 바랐던 작가는 여지없이 가슴이 미어졌으리라.
- 「작가해설」 중에서
어쩌다 걸려든 참새들을 아궁이 잉걸불에 구워 껍질을 벗기면 기름기가 전혀 없는 빨간 속살이 나왔다. 내장을 제거하고 바싹 구운 참새를 뼈까지 오독오독 씹으면 맛이 좋았다. 참새 다리 하나를 얻어먹는 날에는 내 키도 부쩍 자라는 것만 같았다.
- 「참새구이」 중에서
12월이 다 갈 즈음 폭설이 쌓여 집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데 백일 갓 지난 내가 열이 펄펄 나고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쉬며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마음까지도 지쳐가고 있었다. 후퇴하는 인민군들 때문에 밖으로도 나갈 수도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셨다. 면 소재지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왕진을 하던 의사를 모셔 오겠다고 목숨을 걸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나의 아버지」 중에서
요양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모셔오는 날 굳게 닫혔던 대문을 밀치자 화단에 피어 있던 꽃들이 환하게 반긴다.
추위도 아랑곳없이 주인 없는 뜰에서 스스로 핀 수선화 서너 무더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꼭 아버지를 반기는 몸짓 같다.
- 「아버지의 종착역」 중에서
작가의 말
1부
유유상종(類類相從)
담금질
아내의 이름은 복순 씨
소낙비와 무지개
바람 소리
어부바
아버지의 종착역
느티나무
백신
벚꽃 엔딩
나의 아버지
운동화의 추억
잘 가세요 장모님
내 소녀 어디 갔을까
안경을 벗고
다람쥐가 주는 교훈
세 가지의 소원
담배꽁초의 폐해
2부
구름이 흘러가는 곳
반면교사
여름비
정지용 문학관
겸손한 고양이
나의 소속
배롱나무
일편단심(一片丹心) 민들레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덕구 생각
이심이체(二心異體)
그대 있음에
부부의 데이트
거미집
퍼블릭 골프장
베론 성지를 찾아서
뽕잎의 추억
3부
노인과 어른
연둣빛 눈짓
이끌림의 미학
내조의 힘
이성계와 무학과 걸승
해거리
그리운 사람
내 밥그릇 챙기기
아름다운 꽃
고독사(孤獨死)
참새구이
고압선 위 새가 안전한 이유
망년(忘年)
천둥 번개의 가치
진실은 강력한 무기다
위계질서(位階秩序)
벌초하던 날
4부
나는 루저다
노년에 필요한 것
덕조(德鳥)
건강한 학교
넌 대단해
새해 첫날에
불완전한 사랑
분노에 관하여
이별이 하도 서러워
도둑들
누레오치바
흰머리 감추기
장인어른
술잔 들고 물장구 치고
태영이 전화
그림엽서
바람의 연주
작품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