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는 마치 한 뿌리에서 나온 방언처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어순, 문법, 발음, 어휘 등등...
특히 한국어와 일본어는 한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며 어휘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는 뜻이 같으면서 발음도 매우 비슷하다.
일본어는 음독과 훈독이 있어서 읽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잘 살펴보면 고유명사(지명, 인명 등)를 제외하면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지명과 인명은 한자의 음독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그 지방이나 사람이 원하는 대로 불러 주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보통명사는 한국어의 발음과 비슷하게 음독으로 많이 읽힌다. 그러하므로, 훈독으로 발음되는 단어를 제외하고 음독으로 발음되는 일본어 한자 어휘만이라도 쉽게 익힐 수 있다면 일본어 공부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신문이나 책을 읽기 위해서는 한자를 꼭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일본어 방송을 듣거나 일본말을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한자공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이 한자를 몰라도 한국말을 잘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우리말을 할 때 일일이 한자를 머리에 떠올리지 않고도 의사 전달을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한자를 몰라도 일본말을 잘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소(酸素/さんそ)’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어떠한 상황이 주어지면 한자를 몰라도 한국말과 일본말에서 다 통할 수 있다. 나는 일본말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탄 일본행 비행기 속에서 ‘산소마스크’라는 안내 방송을 알아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발음과 뜻이 양쪽 나라 말에서 다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은 말을 할 때 뜻이 같으면서 발음도 비슷한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한자어로 된 어휘는 대부분 그렇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말과 일본말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같은 의미(意味/いみ)를 지닌 일본어의 발음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체득(体得/たいとく)할 수 있을까?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어와 일본어 한자 어휘의 발음에 어떤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執筆/しっぴつ)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러한 한국어와 일본어 한자어 발음 사이에 일정한 패턴이 작용(作用/さよう)한다는 것은 25년 전인 일본유학 시절에 깨달았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연구를 계속하였고 마침내 대학원에서 졸업논문의 주제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논문을 토대로 하여 내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보려고 노력한 결과의 산물(産物/さんぶつ)이다. 구체적인 나의 생각을 간단히 피력(披瀝/ひれき)하면 이러하다. 한국어와 일본어 한자어의 발음이 유사한 것은 일본에 한자를 처음 전달한 사람이 백제의 왕인박사였던 것에 기인(基因/きいん)한다.
왕인박사가 천자문을 일본인에게 전달할 당시에는 가능하면 우리 발음대로 가르치고, 그들은 배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일본인들의 발음으로는 따라 하기가 힘든 것이 있었다. 애초에 일본어 발음에는 한국어의 [ㅓ]나 [ㅕ]에 해당하는 모음이 없는 탓에 [ㅔ] 발음으로 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한국어의 [ㅓ]나 [ㅕ]로 발음되는 것은 대부분 [ㅔ]로 발음한다. 우리나라의 경남지방에서 ‘경제’를 ‘겡제’로 발음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脈絡/みゃくらく)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어의 받침 [ㄹ]에 해당하는 발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일본어의 [つ/ㅉ]로 치환(置換/ちかん,おきかえ)하였다. 또한 한국어의 초성 [ㅎ]에 해당하는 발음은 대부분 [ㅋ]으로 발음되는데 이것 역시 현재 경상도 방언에서 표준말의 [ㅎ]을 [ㅋ]으로 발음하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표준어인 ~다‘해도’를 경상도 사람들은 ~다‘케도’(일본의 표준어에서 같은 뜻과 소리인 けど 혹은 だけど로 쓰이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로 말한다.
이 책에서 천자문의 1,000자의 한자를 초성, 중성, 종성별로 분해하여 유형별로 종합, 정리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이 양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한자어 발음의 패턴을 요약해 볼 수가 있었다.
1. 한국어의 초성(자음)인 [ㄱ], [ㄷ], [ㅂ], [ㅅ], [ㅈ], [ㅊ], [ㅍ]은 일본어에서 대부분 그 음가의 무성음인 [ㅋ], [ㅌ], [ㅎ], [ㅅ]으로 대부분 발음된다. 가끔 같은 음가의 유성음으로 발음되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음가로 발음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2. 한국어의 중성(모음)은 다양하게 발음되는데 한국어의 [ㅓ]와 [ㅕ]가 상당 부분 [ㅔ]로 발음되며, ㅗ나 ㅛ는 ㅗ나 ㅛ로, ㅜ나 ㅠ는 ㅜ나 ㅠ로, ㅏ나 ㅑ는 ㅏ나 ㅑ로 되며, 이중모음은 모두 단모음으로 변하며 ㅢ, ㅟ, ㅞ로 발음되는 것은 일본어에서는 [ㅣ]로 실현되고, ㅚ나 ㅘ는 [ㅏ]로, 그리고 ㅝ는 [ㅔ]로 실현되는 등 여기에도 어느 정도 일정한 패턴이 존재 한다. 본래 방언 사이에서는 모음에 변화가 심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가 된다.
3. 한국어의 종성(받침)은 일본어에서 완벽할 정도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가령 받침 [ㄱ]은 첨가된 음절의 [ㅋ]으로, 받침 [ㄴ]과 [ㅁ]은 [ㄴ/ん]으로, 받침 [ㄹ]은 첨가된 음절의 [ㅉ/つ]로, 받침 [ㅇ]은 장음화로 모두 다 100% 실현되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받침 [ㅂ]은 장음화 혹은 첨가된 음절의 [ㅉ/つ]으로 변하였다.
1. 한·일 한자음 음운대조
1) 초성
2) 중성
3) 종성
2. 한·일 한자음 변화의 패턴
1) 초성자음 변화의 패턴
2) 중성모음 변화의 패턴
3) 종성받침 변화의 패턴
3. '천자문'의 한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