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나리오북 《이별은 이별은 싫어요》에 이어, 작가 김선희의 희곡 《헤븐호텔놀이》는 비현실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실험적인 작품이다. 기존 희곡의 문법을 따르기보다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서고자 한 그녀만의 세심하고 독창적인 작법이 돋보인다. 작가의 꿈으로부터 시작한 이 소재는 하나의 열쇠가 되어 거대한 ‘호텔’을 만들어 냈고, 독자들에게 초대장을 내민다. 위치도, 정보도 없이 초대된 독자들은 등장인물들과 함께 낯선 세상을 탐험하게 되는데, 왠지 모를 불안한 기시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김선희 작가만의 판타지를 겪고 싶다면, 그녀가 두고 간 열쇠를 주워 그 문을 열어 보길 바란다.
몽롱한 꿈의 부유, 얼룩덜룩한 세상들….
‘헤븐호텔’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초대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각자의 판타지.
《헤븐호텔놀이》는 단편적인 순간들의 조각이다. 마치 퍼즐처럼, 관객은 이들이 보이는 모습에 어떤 단서가 있는지 살피게 된다. 희곡 속 여러 인물들이 추상적이면서도 흐릿한, 자욱한 안개 속 환한 빛과 같은 헤븐호텔을 이야기한다. 그들도 호텔의 정체를 모른다. 마법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그곳을 탐험하는 인물들을 보며, 읽는 이들도 함께 몽환적인 그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마치 꿈과 같은 연속적인 조각들이 밀려와 정신을 못 차릴 즈음, 아이들의 놀이가 시작된다.
이 희곡은 분절된 인물들을 살피는 것 또한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인물’과 ‘상황 속 인물’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상황 속 인물’이라는 역할을 아주 훌륭히 수행하도록 노력하는 아이들의 천진함은 ‘인물’뿐 아니라 독자들마저 애쓰게 한다. 아이들과 ‘인물’ 간의 주도권 씨름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현실을 제멋대로 넘나드는 경계 없는 꿈은 불안함을 기저에 깔아 두고 있는데, 어쩌면 허상과 미지로부터 오는 불확실함이 근간일 것이다. 작가는 뚝뚝 끊어지는 인물들의 대사와 장면을 통해 헤븐호텔을 단 하나의 이미지에만 머물도록 두지 않는다. 심지어 ‘신’조차 찬물을 끼얹듯 그곳의 정체를 고발하며 그들의 세계에 균열을 낸다. 인생 최고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노래하지만, 영원한 환상에 갇힐 것만 같은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다시 생각해 보아라. 그 열쇠는 당신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뚜렷한 행복도, 선명한 불행도 노래하지 않는다. 그저 애매한 경계 위에 서서 열쇠를 던져두고 지켜볼 뿐이다. 몽롱하게 부유하는 꿈 덩어리가 소리 없이 세상을 잠식하도록 내버려둔다. 열쇠로 문을 열어도 답은 없다.
그래도 당신은 열쇠를 손에 넣겠는가?
그래도 당신은 헤븐호텔을 탐험하겠는가?
그렇다면,
“헤븐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책에는 차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