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넣어 두었던 단편들을 묶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주인공들은 늙지 않고, 늘 소설 속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멀리 떠나고, 아이는 자라 청년이 되고, 이제 그들을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 작은 등불을 켜 주며 푸른 세상으로 내보낸다. 여러분 이젠 안녕! 안녕히 가세요.
미군 부대 담장을 끼고 바람의 칼날을 가슴으로 막으며 걸어갈 때, 그녀의 눈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커다란 호박이 보였다. 그 호박은 담장 위의 ‘위험!’이란 글씨 위에 달려서 ‘호박을 따면 발포함!’으로 보였다. 줄기는 말라비틀어졌어도 호박은 누렇게 살아남았다.
그녀는 한참 서서 그 호박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얼굴이 까만 아이가 지나가다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이가 나온 파란 대문집의 하얀 담장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낙서가 있었다.
-<위대한 호박> 중
위대한 호박
붕어찜
염천 炎天
쏘가리
엄마의 열쇠
서설 瑞雪
대설 大雪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