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의 골짜기에서 만난 아버지 어머니였다. 수정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자신은 그 오묘한 사랑이 피운 꽃이라고. 아버지 어머니의 말싸움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랐다.
수정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에는 햇살이 눈부셨다. 공원에는 밝은 햇빛 속에 노란 민들레꽃들이 싱그럽게 피어 있었다. 그녀는 그 길을 걸으며 이 땅에 민들레꽃보다 더 질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생각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는 한산했다. 그녀가 사유를 말하자 직원이 국적변경서류를 내주었다. 한 장으로 된 서류는 복잡하지 않았다. 수정은 다시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딸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살더라도 어머니에게 자주 갈게요. 한국에서 안주할 방안을 찾으면 국적을 다시 바꿀 수도 있고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딸이라서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며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머니는 낙심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의 섭섭한 마음만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이제 타이완 국민이 되었습니다. 5년의 주재 기간도 거의 채웠고 국립타이완대학을 나왔고 현직 타이완 공무원이므로 정부의 승인이 났습니다.”
다음 날 출입국 관리 사무소를 찾아가자 담당 과장이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그녀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쪽배를 타고 풍랑에 시달리다 땅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 길가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타이완의 민들레는 한국의 민들레보다 꽃대가 굵고 꽃잎도 크고 색깔도 더욱 선명했다. 그녀는 민들레가 피어 있는 공원을 배회했다. 공원에 산책 나온 시민들이 힐끗거렸다. 마치 외국인을 대하듯이. 그녀는 연못가의 벤치에 앉았다. 맑은 물에 비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물속의 여인이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물속의 여인이 반가웠다. 마수정이 아닌 마슈이징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우기를 원하고 있다.
역사의 골짜기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인간은 누구나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사회가 구성되고 그 사회 속에서 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나와 유사한 역경을 거쳐 온 남자와 여자를 설정해 이 소설을 쓰고 있다. 그들이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 내 가슴에도 못다 한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펴 두 사람을 추적해 왔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두 사람이다.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나고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다 만났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의 매력(혹은 신비)에 이끌려 사랑했다. 그러나 그 다른 세계의 한계에 부딪쳐 사랑을 이어 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우기를 원하고 있다. 역사의 골짜기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길 바라면서. 쓰고 고치고 또 썼다. 소설 속의 여자와 남자가 다시 사랑을 꽃피울 때까지.
별도의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