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건 버스 안을 가득 채우는 환하고도 깨끗한 빛이 바로 그 사내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빈자리 바로 앞까지 왔으나 앉기가 꺼려졌다. 이상한 사람 옆에 한 번 앉았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안전대를 잡고 서 있기로 마음먹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자네, 여기 앉게.”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네?”
“에스더야, 마음 편하게 먹고 내 옆에 앉아.”
누구야 이 새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치한인가?
“누구신데 제 이름을 아세요?”
“뭐, 난 다 아니까.”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사람들은 날 그분이라고 부르지.”
미친놈인가? 난 말문을 닫았다.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훨씬 오래전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참의 명제를 기록했다면, 앞뒤 문장들과 무관하고 생뚱맞게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적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 및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그분께서 선택하신 그 백성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기록(성서원 성경 참고)’한 것이 저술 목적인 창세기가, 그것이 집필되었을 당시에 예수님을 미리 알고서 나머지 구절은 거의 거짓이고 예수님과 관련된 몇몇 구절들만 참인 구절로 의도적으로 저술했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 즉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창세기를 저술한 저자는 창세기를 통해 ‘사람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성서원 성경 참고)’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저술을 하는 도중 성령의 감동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을 중간중간 보태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 훨씬 합리적이다. 즉 창세기의 저자는, 나름 자신의 주제 의식을 중심으로 그것을 수미일관적이게(문맥상으로) 연속적인 이야기를 전개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앞 문맥이 다음 문맥과 이어지고 다음 문맥이 그다음 문맥과 이어지는 전개를 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아멘.
1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2 기독교 변증
3 크라이스트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