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이렇게 할 수 있었네.’
사람은 인생을 한 번 살 뿐이지만, 그 인생 안에는 여러 번의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있다. 다만 사는 동안 깨닫지 못할 뿐. 월세도 내지 못하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자신의 삶마저 포기하고자 한 남자가 낯선 시골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시작하는 인생 ‘이모작’ 이야기.
“가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명칭’에 집착해요. 제가 종교인으로 살아가기에 가능한 면도 있지만, 세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자신이 그 일의 가치를 부여해야만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그 일의 본질을 깊게 생각해 본다면 자신이 하는 일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측면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죠. 제가 만약 연극을 배우들의 전유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과연 이모작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시작도 해 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성현 씨도 참여하고 계시고 점차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우리 이모작은 이미 연극의 범주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나에겐 그저 열정을 쏟을 일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출판사를 시작한 초기 나는 사무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귀가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집이라고 해 봐야 고시원이었기 때문에 사무실이나 집이나 똑같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 내고 함께 작업하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그렇게 조그마한 모니터에 집중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도 불편하게 잤지만 행복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지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점차 ‘돈’을 생각하게 됐고 미래를 미리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열정, 에너지와는 거리가 점차 멀어졌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워라밸’의 측면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내 시간은 많았고 여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열정을 쏟을 시간이 사라지니, 그 사이에 ‘게으름’과 ‘열등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일을 안 하면서 편히 지내는 것 같고, 내 수입은 변하지 않는다며 처음에 시작했던 마음은 어디 갔는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땐 그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느니, 어차피 혼자라느니 하는 식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내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다만 정말 처절하게 문제를 외면하고 싶었고 막연히 시간이 가면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결국엔 이를 인정하기 싫어 세상을 떠나는 선택까지 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인가. 그랬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지 오늘과 같은 일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의미가 바로 이게 아닐까란 생각이었다.
본문 중에서
Prologue
Chapter 1 생존 신고
Chapter 2 성천군
Chapter 3 그땐 그랬지
Chapter 4 아버지
Chapter 5 과거
Chapter 6 연극
Chapter 7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