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쓰다』는 ‘어반 스케치’를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상들을 담은 그림에세이다.
작업실에서 오랫동안 수채화 작업을 하다 세상이 궁금하여 밖으로 뛰쳐나온 나에게, 어반 스케치는 그림법의 신세계였으며, 내가 앉은 모든 곳이 작업실이 되었다.
매 순간 달라지는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풍경과 사물로 소환되는 과거, 그 과거와 연결되는 현재, 미래의 상상까지…. 생각이 들어간 그림은 실체를 가진 생명체가 되는 마술을 부린다. 또한 어반 스케치는 여행의 핑계가 되고 알리바이가 되어 주며 내가 가는 곳 어디라도 같이 가는 ‘반려그림’ 역할을 한다. 혼자이지만 딱히 혼자임을 느끼지 않게 한다.
어반 스케치를 시작한 지 10여 년, 생각을 불러오고 이어 주고 확장시켜 준 그림은 글이 되었다. 이 책은 얼핏 여행책처럼 보이지만, 실재적인 여행지의 안내나 느낌을 위주로 한 여타의 여행책과 달리 풍경 속에서 만나는 마음을 여행하는 책이다. 여행을 하면서 다시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 속의 여행. 무엇이 주고 무엇이 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올라가는 시소놀이처럼, 그 양 끝에 있는 그림과 글은 한 치도 다름없는 똑같은 무게로 서로의 균형을 잡아 준다.
미약하게나마 이 책으로 그림도 글감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글도 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욕심으로 다음을 기약해본다.
조금만 소홀해도 뒤죽박죽되는 살림살이처럼,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여기저기 마실을 다니는 ‘마음’. 저자 한정선에게 그 마음의 자리를 찾아주고 쓸고 닦아 주는 청소도구란 바로 ‘그림 그리기’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고 싶은, 두고 오기에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풍경을 만날 때 할 수 있는 것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나그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묘약은, 일단 그리는 것이다. 욕망한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소유 그 자체보다 소유에 따를 부담감이 더 힘겹게 느껴질 때, 그 물건들 또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다 보면 이미 내 것이 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구매욕이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떠나보낼 때 그림은 애도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내 곁에 머물러줘서 고마웠어~’ 영정그림으로 영정사진을 대신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마음을 담고 내게 온 물건들을 그리는 것도 고마움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그림은 저자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대상들을 향한 ‘구애’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고 이야기한다.
“언제인지 모르게 들어와 차곡차곡 쌓인 마음의 서랍 속 기억들이 참견을 한다,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느새 나는 그림과 대화를 하며 뚜벅뚜벅 그림 속으로 들어가 나도 그림이 된다. 강 밑바닥에 쌓여있는 퇴적물을 헤집듯, 그림은 기억과 생각을 뒤섞어 나를 행복하게도, 심란하게도 한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있는 느낌.”
저자의 글쓰기는 전적으로 그림에 빚지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림을 쓴다.”
Prologue
1. 감염병 시대, 캐리어 대신 배낭
섬 여행, 숙소의 새 판을 짜다
속초의 변신은 무죄
겨우살이 준비로 가을 여행을 떠났다
해방촌에는 그 이름만큼 독립적인 문화가 있다
조금 이른 봄… 한적한 봄 마중
가깝고도 먼 인천, 1박 2일
숙소 뷰는 ‘진리’다
2. 매달 새로운 계절
제주의 봄은 2월에 시작된다
4월의 혼돈 속에서… 민들레가 들어왔다
액자 속에서는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가을의 통과 의례… 단풍 그리기
해가 짧은 겨울에는 햇살 유목민이 된다
지금 이맘때… 겨울 언저리
나무들의 호캉스, 겨울 산 겨울잠
3. 그림에 무임승차하는 이야기들
한강이 아름다운 것은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베란다… 아파트의 숨통
모여라~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등대 이야기
4. 그림으로 소환되는 여행
코로나 이전 마지막 해외 여행… 대만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기
고향을 ‘여행’하다
5. 일상 스케치
공항이 여행의 목적지가 되었다
꽃을 여행하다
어반 스케치 대신 지반(집 안) 스케치
즐거운 나의 종로
신통방통하다가 난감해지는 세운상가 방문기
6. 지극히 사적인
인사동… 나의 ‘벨 에포크’
동서와 1박 2일
생애 처음, 짧고 강렬했던 자유
어쩌다 절… 그림 선(禪)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단풍
7. 오래되어 새로운
높이차의 비밀을 간직한 계단… 계단은 비상구가 되었다
빨래… 눈과 마음의 풍경
비어있는 풍경… 담벼락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것은 어딘가에 숨어있다
집… 시간을 담는 공간
8. 어반 스케치의 일등공신… 카페
루프탑은 원래 옥상이었다
카페에는 메뉴판에 없는, 분위기라는 메뉴가 있다
카페와 뷰는 동의어이다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