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은 애틋하기 마련이라지만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스며 있는 오래된 역사와 나무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나니 너무나 서운했다.
모든 것을 잃기 전에 오래된 역과 나무를 글과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사했던 벚꽃이 시나브로 지고 있다.
어느새 수수꽃다리, 영산홍이 다투어 피어나고,
은행나무, 느티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연초록빛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마침내 봄이 무르익었다.
- 연천역 돌배나무 中 -
글을 쓰기 위해 전국을 누비며 취재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흔한 나무조차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다고 해도 엉뚱하게 잘못 알고 있는 사례도 아주 허다했다. 심지어 지자체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버젓이 안내문까지 세워 놓았는데도 나무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누구나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그 차이를 인정한다고는 해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공연히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사보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내놓게 되었다. 막상 책으로 내놓기엔 여러모로 부족해서 틈나는 대로 내용을 보충하고 다듬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발간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이미 폐역이 되었거나 폐역을 앞둔 역사와,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오래된 나무들에게 바치는 마지막 헌사라는 생각이 들어 발간을 하기로 결심했다. 숲은 유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더 많은 종이를 소비하는 것이 결국 숲을 살리는 길”이라는 맥스 애덤스의 말도 책 발간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 이제는 내 나름대로 조금이나마 부채 의식에서 벗어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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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이색 철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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