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내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이런 질문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나도 알고 있었고, 번번이 해답을 얻지 못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가올 미래는 내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지나온 과거는 돌아보고 정리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이러한 계기로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유독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몇몇 뚜렷한 사건들을 정리해 보니 더 명확해진 몇 가지가 있었다. 과거에 힘든 고난이었다고 느껴졌던 일들이 나를 변화시켰고 지금 누리는 축복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무덥고 후텁지근한 습기가 온몸을 감싸며 금방이라도 물이 흘러내릴 것같이 축축한 여름날이었다. 여기저기 등불이 켜져 있었고 모기떼들이 달려드는데 마을 사람들과 외가, 그리고 큰집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평소 무섭기도 하였지만 큰 바위와 같이 든든했던 아버지는 마당 한쪽 관 속에 있었다. 아버지가 관 속에 누워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향불을 피우는 등 낯선 풍경들이 이어졌다. 늦은 밤 변소를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면서 아버지의 관 옆을 지나갈 때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나오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관 옆을 지날 때마다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머리가 쭈뼛하게 섰다. 아버지가 다시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장례를 치르면서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파 놓은 땅속에 반쯤 보이는 관 위에다 흙을 뿌리며 통곡하는 가족들을 따라 나도 그냥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뿔뿔이 흩어진 이산가족이 되었다. 형은 맏이로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외가에 머물렀고, 가장 나이가 많은 누나는 형 뒷바라지를 이유로 형과 함께 외가에 남았다. 두 살 어린 동생은 제천에서 가까운 주천이라는 곳 어느 집 양자가 되었다. 나는 태백에 있는 큰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렇게 우리 가족을 각자 흩어 놓았다.
- 본문 중에서 -
들어가는 말
제1장 아버지 (9세)
1. 아버지
2. 영월과 태백
3. 숟가락
4. 불
5. 쑥대밭
6. 간첩
7. 회초리
8. 벌
9. 큰집
10. 빵값
11. 도둑
12. 눈싸움
제2장 직장 (14세)
1. 사투리
2. 짱깨
3. 칼
4. 수타
5. 가출
6. 외상값
7. 건달
8. 자전거
9. 직업소개소
10. 카나페
11. 피자리아
12. 직업소개소 2
13. 86 아시안게임
14. 열차 식당
15. 탈선
16. 대주방
17. 호텔
18. 조리대회
19. 대학교수
20. 강정리
21. 대전
22. 김치
23. 교환교수
24. 대전 2
제3장 공부 (24세)
1. Be 동사
2. 검정고시
3. 잠
4. 양아들
5. 연탄가스
6. 대학
7. 등록금
8. 아르바이트
9. 군사훈련소
10. 대학원
제4장 결혼 (32세)
1. 강촌
2. 연결고리
3. 강촌 2
4. 결혼
5. 부암동
6. 출산
7. 가족
제5장 신앙 (42세)
1. 꿈
2. 교회
3. 체험
4. 생명의 길
5. 우울증
6. 변화
7. 수술
8. 복
9. 빚
제6장 코로나 19 (59세)
1. 2020
2. 터닝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