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선 시인이 『파리 날아가다』 이후 2년 만에 새로운 시집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평범한 일상을 관찰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잘 느낄 수 있는 시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 시집 『불꽃놀이가 끝난 뒤』는 더욱 관록이 붙은 시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어 한층 반갑게 느껴진다.
절세絶世의 명시名詩
- 현대시조의 지평을 열어 제치다-
柳 聖 圭/세계전통시인협회 회장
우헌愚軒 이기선 시인이 <불꽃놀이가 끝난 뒤>라는 시집을 펴낸다. 이 시인은 《시조생활》 제91호에서 나의 심사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으니 그 인연이 남다르다 하겠고, 이분의 인품이나 시적 재분才分을 내가 알고 있다. 올곧은 지조의 모범 관료요, 천부적 시인임을.
이분은 충효와 선비의 고장인 충남 서산시에서 태어나 유학자인 부친의 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가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멀리 서해바다가 꿈처럼 펼쳐 있는 수려한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시심詩心을 키웠다.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어릴 적 꿈인 시인이 되어 성취감에 들뜨기도 했지만, 혹여 신성한 시를 욕되게 할까 봐 적이 걱정되더란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다. 준엄한 작가정신으로 무장하고, 학덕겸비의 식견과 천부의 시적 재분이 결합된 이분의 시는 현대시조의 지평을 완벽하게 열어 제친다. 그리고 절세의 시인이 된다.
내가 60여 년을 서문이나 평설을 써 왔지만, 이번만큼 나를 놀라게 한 시집은 일찍이 없었다면 과찬이라 할지 모르나 사실이다.
명시名詩란 함부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우선은 천부적인 재능에다 피나는 작고作苦가 뒤따를 때 얻어지는 법이다. 이기선 시인의 시가 바로 그런 것이다.
풍부한 어휘력이나 고도의 수사학, 특히 극도로 절제된 응축력이나 시공을 넘어선 예술적 극치 앞에서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세계전통시인협회 제정 우수 작품상을 기쁜 마음으로 이분께 드렸던 것이 아니었나. 정히 한국문단의 최정상을 누비는 대가라 할 것이다.
시詩란 과연 무엇인가?
자고로 시에 대한 정의는 하도 많아서 시는 정의 지을 수가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의 시론詩論을 정립하기 위해 시의 본질성과 내용성. 소중성. 고귀성을 언급한 시론을 발췌해 본다.
① 해어(A.W.Hare)는 ‘시는 자연의 상형문자를 풀어낼 열쇠이니라(Poetry is the key to the hieroglyphics of Nature)’라고, 시의 본질성을 말했으며,
② 퓨러(Fuller)는 ‘시는 말의 음악이요, 음악은 소리의 시 이니라(Poetry is music in words, and music is poetry in sound)’라고, 시의 내용성을 말했으며,
③ 에머슨(Emerson)은 ‘시는 신앙이니라(Poetry is faith)’라고, 시의 소중성을 말했으며,
④ 괴테(Goethe)는 ‘시를 위한 귀를 갖지 않은 자는 그 누구라도 야만인이니라(He who has no ear for poetry is a barbarian, be he who he may)’라고, 시의 고귀성을 말했다.
이상의 시론을 근거로 이 시인의 시를 음미코자 한다.
어매는 입을 가리고 나직이 칵칵 거렸다
알뜰히 살을 발라 내 입에 넣어주고
남은 살 빨아 먹다가
목에 걸린 가시
어매 살아생전 목구멍에 박혀서
툭하면 목을 쑤시고 가슴팍 찌르더니
노을을 건너시던 날
내 가슴에 박혔다
- ‘가시’ 전문
이 시인의 시는 위에서 언급한 시론인 시의 본질성, 내용성, 소중성, 고귀성을 전부 충족시켰다. 이제 ‘가시’를 감상키로 한다.
이 시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명언을 웅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생선의 알살은 모두 자식의 입에 넣어 주고, 어머니 당신은 가시에 살짝 남아 있는 살을 빨아 먹다가 그만 가시가 목구멍에 걸렸다. 그 가시를 일생 살 속에 묻고 살자니 알살이 수시로 따끔거린다. 가난을 헤어나려니 마음이 쓰린데, 몸까지 쓰려온다는 대목이 자식 된 모든 우리를 눈물겹게 한다.
이 시의 둘째 수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그 가시가 내 가슴에 옮겨 박혔다고 노래한다. 어미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거니, 자식은 어미가 죽으면 산에다 묻는 운명적 불효자일 수밖에 없나 보다. 이 시의 상징성과 절제미가 일품이다. 대단한 사모곡이기도 하다.
서문 中
서문
1부
가시
구석
장마
소이부답
발톱 깎는 아내
불꽃놀이가 끝난 뒤
동행
국수 먹는 남자
어머니의 동무
꿈길로 오라
아버지라 불렀을 때
치매
결별
오줌소리
아버지의 손톱
가슴에 품은 사랑
계단에 앉아
연민
문병을 사절합니다
야근
별에서 온 우리
주름의 의미
요양원 풍경
봄에 떠난 벗에게
늙어간다는 것
2부
종로에 핀 매화
동백이 지다
머위쌈
개화
꽃그늘에 앉아서
노을에 물든 배꽃
깨꽃 또는 샐비어
낙화를 밟다
잎을 위한 제언
토끼풀 꽃
잡초
달빛, 숨어들다
배추꽃
한낮의 연 밭
벚꽃과 버찌
해바라기
용문사 은행나무의 가을
가을배추
아파트의 가을
빈 나뭇가지
찔레나무
저만이 외롭다 한다
관솔로 만든 새
3부
로드 킬
노을에 비낀 우체통
독도
잠자리의 마지막 기도
항일의거 표지석
못에 걸린 옷
축댓돌
겁 없는 새
미라가 된 벽시계
보원사지 석탑
참치
길고양이
봄 개울
사금파리 더미
지우개
연탄
소나기
여름 호수
오리와 잉어
승강기 점자
1월에 내리는 비
허공에 쏜 화살
파문
밤에 내린 비
마파람
4부
광교에서
듣지 못했네
생각
해빙
이른 봄
못
입춘
바닷가의 소나기
등산 가는 날
어둠의 습격
손톱을 깎다
엑스레이 사진
추억은
마음
길이 사라지다
입추
장갑을 끼며
정류장 밤 풍경
휴일 아침
나이테
유언 같은 말
하늘을 빼앗기다
옛 이야기
‘세월’이라는 말
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