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수 없음으로서 얻는 자유를 희원한 적이 있다.
기억의 상실이 아닌 인간의 본래적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화석처럼 굳어진 절망을 떨쳐내지 못한 채 정신적 유랑과 회귀를 반복하는
것도 결국은 기억의 끈에 붙들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은 어느 먼 은하계의 외계인과 교통하는 환상보다도 적은 확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가능의 여지를 생각해 볼 수조차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좀 더 부연하자면 나 역시 아주 간혹은 그럴 때가 있긴 있었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인데, 즉 어느 공간 어느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러니까 아득하게 먼 오래전이었든 가까운 과거였든 언젠가 그랬던 것 같은 눈에 익은 공간의 상황 때문에 모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러한 느낌은 그런 것과는 자석의 극과 극만큼이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생소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평생 동안에 이런 기분은 몇 번쯤을 맛볼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영역이 다를 뿐으로 일괄의 수치가 합당치는 않겠지만 내겐 지금이 단 한 번의 그런 시간일 것임을 성급하게 유추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미증유적인 것이라고 할 만큼 낯선 감각이기 때문이었다.
- 본문 중에서
작가의 말
01 퓨전 철학관
02 서라벌 여인
03 니체에게 메일을 보내다
04 위험한 허세
05 미몽
06 이타적 음모
07 청산의 기법
08 심리구조
09 기억의 잔해
10 아주 좁은 비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