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 교지에 ‘딸기’라는 제목의 시가 실렸다, 어린 딸의 활자화된 작품을 본 아버지는 환한 웃음으로 기뻐하며 자장면을 사주셨다. 그 후로 글짓기 대회에 나가 ‘점수’, ‘빗방울’ 등으로 상을 탔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자장면을 사주셨다. 외식의 호사였던 자장면은 아버지가 내게 주시는 부상이었던 셈이다. 기뻐하는 아버지를 위해 글짓기를 열심히 했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사주는 자장면이 좋아서였는지 모르게 시작된 일이 오늘의 첫 수필집을 만들어 주었다.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 구순을 넘긴 아버지는 병원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모두들 집으로 다시는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웃음과 응원에 힘입어 걸어온 길 위에서 아직은 그 빛이 더 필요한 나의 기도는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른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살고 있는 시대다. 네트워크라는 연결망 속에서 세계인이 만나고 호흡하는 초과학적, 초현실적으로 급변하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오직 시간만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을 소재로 쓴 수필들을 모아 놓고 보니 삼십 년 전에 쓴 글도 있어서 지금의 정서와는 사뭇 다를 수도 있는데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 해도 삶의 무늬가 그대로 드러난 글이라서 숨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가 따뜻해지면 행복하겠다.
원고를 정리하고 편집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좋은 책이 나올 것인지 고민하느라 날짜만 흘려보내다가 출판사를 결정하고부터는 몸과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 제 책을 출간하여 안겨드릴 테니 그때까지 힘을 내세요.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그리고 자장면도 꼭 사주셔야 해요.”
사람 사는 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던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닿았는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누워 계신다. 기운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보여 주는 모습들이 마치 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신호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첫 수필집 『심플한 반시간』은 나의 유년과 함께 달려오는 동안 지켜보고 박수치며 93세까지 기다려 주신 아버지께 온전하게 바친다.
2016년 여름
1. 첫사랑을 떠나보내며
개 팔자 상팔자
그 남자
남편의 사랑법
딸에게
배냇저고리
사랑하는 아들에게
침몰한 하루
며느리의 거짓말
스무 날의 노후연습
아름다운 기억
애완동물
우리 집은 아수라장
우아한 식사
잠이 그리웠던 시절
정든 집
첫사랑을 떠나보내며(‘첫’의 굴레)
할머니
2. 그리운 나의 뒷모습
가을햇살 따라오신 당신
그녀의 집 앞
그리운 나의 뒷모습
미결수 K
바나나 아저씨
비행기 표
빨간 립스틱
사이다 여사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운명이겠지
청기와 집의 딸
해피의 행복론
황토방갈로의 밤
횡재한 여자
3. 거울 속의 여자
고구마 50박스
광복절 유감
놓고 온 전화기
미국에서 생긴 일 1(문화차이)
미국에서 생긴 일 2(문화차이)
살아가는 이유
삼십오 년 된 목욕탕
새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
오라이를 외치던 시대
중년의 후회
허탈한 선심
호기심과 두려움
거울 속의 여자
만병통치약
愚公移山을 꿈꾸며
빨리 가면 뭐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