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기억과 기록의 이야기
우리는 하루하루를 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日常)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가족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성공스토리나 인생역전 드라마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내 인생도 그에 못지않다. 책을 넘기면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아서’ 혹은 ‘나와는 다른 이야기’라서 기뻐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할 것이다.
할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에는 달걀 부침개도 어묵볶음도 없었다. 검은콩을 조린 것이 그나마 나은 반찬이었다. 친구도 없는데 도시락까지 맘에 들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벌겋게 김칫국물 번진 도시락을 꺼낼 때도 창피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따라 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럴수록 시골에서 놀던 때가 그리워졌다. -45p
아빠라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해주겠다고 달려들더니 조금 큰 후에는 오히려 뽀뽀해 달라고 난리다. 딸들은 재우고 깨우는 것도 재미있다. 아기 때는 시간이 되면 잠들었는데 커갈수록 재우는 수고가 더 따라야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쌔근쌔근 잠이 든다. 은이와 윤이는 내가 들려주는 창작동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96p
라면은 내가 사는 이곳이 아주 작은 촌 동네일 것이고, 10리 밖으로는 분명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줬다. 그것은 미군 건빵이나 쫀득이와는 차원이 다른, 중학생 때 나를 기겁하게 만든 삼중당(三中堂) 세계와 견줄 만한 충격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하루 두 번 학교 앞을 지나가는 버스 뒤꽁무니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 정도가 세상 밖의 무엇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130p
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나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박탈당한 자유, 한 발짝 너머에는 있을 것 같은 자유가 그리웠다. 이념도 사상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철창 밖으로 한 발만 옮기고 싶었다. 3일째 되는 날은 울 지경이었다. 경찰관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아저씨, 10초만 나가 있게 해주세요.” -147p
나의 살던 고향과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 함께 미역 감던 동무들, 만들기 숙제로 진달래나무 뿌리를 캐던 그 시절이 잊히는 것이 아쉬웠다. 잊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것을 잊지 않는 나를 기억한다. 가난하지만 추(醜)하지 않고, 공부가 크지 않지만 천(賤)하지 않고, 너그럽지는 못하더라도 협량(狹量)치 않은 삶이 나의 바람이다. -201p
서문: 알고 보면 소중한 일상 혹은 히스토리
moderato
01. 여름
02. 동행
03. 소년
04. 내공
05. 생활
ritardando
06. 성장
07. 여우
08. 이별
09. 조상
10. 라면
a tempo
11. 청춘
12. 원고
13. 출장
14. 편지
15. 신념
발문: 새로운 장르를 향한 긴장 그리고 자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