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턴이 필요할 때 직진하는 그녀
저자 : 강순덕
분류 : 문학
발간일 : 2025-01-05
정가 : 15,000원
ISBN : 979-11-85135-41-0
내게 남은 사랑은 세상은 온통 이야기 꽃밭입니다.밝고 환한 정원,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서 사랑이 넘쳐 나는 꽃밭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춥고 어두운 골목 끝에도 가파른 언덕길에도 빗방울 하나 스며들 틈조차 없는 바위산에도 꽃밭은 있습니다. 비바람 속에 눈보라를 맞으며 뿌리를 내리고, 물 한 모금, 빛 한 줌 없이 꽃잎을 피워야 한다면 뿌리 내린 그 꽃밭을 탓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꽃들은 자신이 선 땅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피울 수 있는 만큼으로 그저 피었다가 집니다. 오늘도 어느 시멘트 보도블록을 비집고 작은 풀꽃이 피고, 내일은 지고 마는 꽃입니다.인간의 꽃밭도 이와 같습니다. 누군가는 화려하게 피어나 향기롭게 살다 가고. 누군가는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돌아봐 주는 사람도 없이 사라집니다.사람은 살아온 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걸까요? 하얀 벚꽃이 흐드러진 봄 길, 붉은 장미가 향기로운 여름 들판, 한들한들 바람결에 나풀대는 코스모스 핀 가을 언덕은 나의 꽃밭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데 모이고 박수받는 자리는 나를 외면했습니다. 어린 날부터 화려한 꽃길보다도 차가운 겨울의 눈보라를 유독 사랑했습니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새하얀 상고대를 황홀하게 바라봤습니다. 홀로 선 나무에 기대서서 빈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을 차고 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꽁꽁 언 연못 위를 달리고 차가운 눈밭에 눈사람을 세웠습니다. 그 겨울의 끝에 꽃이 피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알았습니다. 누군가는 알 수 있는, 또 누군가는 알고 싶지 않은 여덟 편의 작은 이야기를 세상에 펼치고자 합니다. 차가운 얼음꽃을 좋아했던 어린 소녀에서 숙녀로,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시인이 되기까지 쉰의 세월은 녹록지 않았고, 굴곡진 삶은 나를 삐뚤어진 어른으로 살게 했습니다. 시인이 되고 보낸 십 년의 세월은 내면에 갇힌 어린 ‘나’와 어둡고 쓸쓸하고 슬픈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동면에 잠든 나의 이야기를 봄의 꽃밭으로 끄집어냈습니다. 새는 바람을 등지고 날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힘을 빌려 하늘을 날지 않습니다. 바람을 마주하며 바람을 밀고 날아오릅니다. 시인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는 시간 안에서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하게 되었고, 더 높은 하늘, 구름처럼 몽글몽글 퍼지는 수없이 뻗어 나갈 꿈을 향해 비상飛翔의 날개를 펼치고 싶었습니다. 여덟 편의 이야기를 마주한 후에야 비로소 나를 알고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내게 남은 사랑은 이제껏 누려 온 무엇도 아닌 새로운 길 위의 걸음이고자 합니다. 2024년 12월윤슬 강순덕 - 「작가의 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