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의 후예
저자 : 송철범
분류 : 문학
발간일 : 2023-08-12
정가 : 13,000원
ISBN : 979-11-392-1238-9
보릿고개가 늘상이던 50-6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 낸 작가(본문의 표현대로라면, 어느새 지치고 노쇠한 몸뚱이가 사용 기한이 지난 비품처럼 한구석에 치워진)가 한적한 소읍으로 물러나, 안식과 무위의 일상을 살면서 아무도 들어 주지 않으려 할 늙은이의 얘기를 담담하게 적어 낸다.책은 작가가 중2 중퇴의 학력으로 세상을 헤쳐 나간 청년기의 시련과 낭만과 사랑을 그린 1부, 국가 간 문화의 다양성과 인식의 차이 및 폭력, 갑질, 약속 등 삶의 주요 테마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밝힌 2부, 낙향 후 여주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3부, 노화와 노인에 관한 이슈를 다룬 4부로 구성된다. 특히, 작가는 표제의 글에서 수년 전부터 크게 불거지기 시작한 한일 간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인한 사회 정서적 갈등을 바라보는 작가 나름의 시각을 제시한다. 나는 친일파의 자식이다. 너무나 뻔한 사실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친일행위자였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실이 너무나 엄연하여 부인할 엄두를 못 내게 됐다.이런 사실은 최근 몇 년 동안 미디어와 신문·책 등을 통해 듣고 읽은 내용들을 종합하여 나 혼자 내린 결론이고, 현재까지 아무도 아버지가 친일파라고 말하거나 문제 삼은 적도 없고,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스스로 당신이 친일행위를 했다고 말한 적도 없으며, 내 지인 중 그 누구도 나를 친일파의 자식이라고 농담으로라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아버지는 비록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이나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았고 별다른 처벌이나 비난을 받지도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아버지가 친일파였고, 또 친일행위를 자행했다고 판단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의 친일행위가 이루어진 장소가 국내가 아니어서 알려지지 않았고, 중요 인물도 아니었으며 아버지와 비슷한 친일행위자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처벌이나 기록을 피할 수 있었을 뿐이지, 내가 이해하는 정의상의 친일행위자 범위에는 분명 포함되기 때문이다.(중략)나는 아버지가 친일행위자였고 나도 일본을 가깝게 느끼며 살았다는 사실 자체는 조건 없이 인정하지만, 이 사실에 특별한 죄의식은 없는 것 같다. 아버지가 당신의 친일행위를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것은, 살아 계신다면 아버지의 몫이고 아버지가 결정할 문제이다.우리는 지금 지구촌에 살고 있다. 친일과 친중, 친미와 친러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백그라운드와 국제적 지향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용인하며 이 나라에서 어울려 지내야 우리가 이 시대를 제대로 사는 거 아닐까?